석정의 삶과 문학세계 재조명, 時 정신 잇는다

 

 

발음(發音)

 

살아보니

 

지구는

 

몹시도 좁은 고장이더군요.

 

아무리

 

한 억만년 쯤

 

태양을 따라 다녔기로소니

 

이렇게도 호흡이 가쁠 수야 있겠습니까!

 

그래도 낡은 청춘을

 

숨가뻐 하는 지구에게 매달려 가면서

 

오늘은 가슴 속으로 리듬이 없는

 

눈물을 흘려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보 안심하십시오

 

오는 봄엔

 

나도 저 나무랑 풀과 더불어

 

지즐대는 새같이

 

발음하겠습니다

 

- 전북일보 1953년 1월 1일자에 발표된 신석정 시인의 '발음(發音)'

 

석정의 문학적 유업을 계승·확산하는 일에 주력해온 석정문학회(회장 허소라)와 전북을 대표하는 양대 문학단체인 전북문인협회(회장 소재호)·전북작가회의(회장 김용택)가 석정의 추모 30주기를 맞아 한 마음으로 모였다. '신석정 시인 30주기 추모 문학제전위원회'(공동제전위원장 허소라·김남곤).

 

오는 9월 3일부터 일주일 동안 전주와 부안에서 석정의 시혼과 문학정신을 되새기게 될 석정 추모문학제는 석정의 문학을 연구해 온 30년을 결산하며 새로운 연구방향을 모색하는 책자 발간과 도민을 대상으로 한 문학강연·문학기행, 석정의 유묵(遺墨)과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 도내 서예가·화가들이 새롭게 제작한 신석정 대표 시화 전시, 기념우표 발행 등으로 꾸며진다.

 

원광대 오하근 교수가 책임을 맡은 추모 문집은 시인의 문학세계와 시정신을 계승 발전키 위해 전국단위의 필진으로 구성된다. 석정의 시세계를 조명할 문학특강(9월 4일 전북예술회관)은 석정의 사위인 전북대 최승범 명예교수와 군산대 허소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신동욱씨가 강연한다.

 

석정의 고향인 부안 일대를 돌아볼 문학기행(9월 5일)은 '촛불' '슬픈목가' 등 시인이 시작활동을 한 부안읍 청구원(도기념물 제84호)과 석정의 시비가 있는 변산 해창 석정공원 등을 둘러보며 시심을 새긴다. 석정의 셋째 아들인 신광연씨와 부안예총 양규태 회장, 원광대 오하근 교수가 안내자로 참가한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프로그램은 행사기간 전북예술회관에 마련될 각종 전시. 시인의 친필 시화와 서예작품, 시인의 대표시를 서예가·한국화가 등이 옮겨낼 시화, 시인의 역대 간행 시집의 초판본 및 30∼40년대 주요작품 게재지, 석정이 제자·자녀 등에게 보낸 편지, 유족·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미공개 사진, 시인의 대표적 유영(사진) 등이다. 허소라 제전위원장은 "1939년 인문평론사에서 간행한 첫 시집 '촛불'을 비롯한 각 시집의 초판본에는 한국전쟁 이후 가난 때문에 판권을 넘기며 사라진 시들을 찾아볼 수 있어 학문적인 성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시인이 1973년 11월 군산교육대에서 문학특강을 했던 당시를 녹음한 테이프를 전시 공간에서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행사기간 부안문화원(원장 김원철)은 지금까지 7차례 열어온 석정문학제를 확대해 백일장·석정시 낭송회·추모문학강연 등을 연대행사로 마련한다.

 

제전위는 이후 석정의 시문학사를 가늠할 수 있는 석정시전집 간행과 시인의 고향인 부안에 석정의 삶과 문학을 담을 문학관 건립사업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정의 삶과 문학

 

암담했던 1930년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라는 시어로 한반도 삼천만 민중에 희망을 안겨준 현대시단의 거목, 신석정 시인(1907∼1974). 부안이 고향인 시인은 식민지 시대와 광복 이후의 혼란과 갈등,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어려운 세상을 살았지만, 그와 인연을 맺은 이들은 그를 '속됨이 없는 난초와 같은 기품을 남기고 간 시인'으로 기억한다. 특히 "일제 하에서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일문(日文)으로 원고를 쓰지 않은 보기 드문 문인이었다”는 군산대 허소라 명예교수의 연구는 시인이 지닌 시정신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전북의 땅심을 받고 자란 이들에게 석정은 각별하다. 석정은 이병훈·허소라·이기반·이가림·강희안·오홍근·오하근 등 전라도의 많은 시인과 평론가를 길러냈고, 그의 맑은 시정신은 도민에게 예향의 긍지를 갖게 했기 때문이다.

 

원로작가 홍석영씨는 "석정은 줄곧 시와 더불어 살았고 한시도 시에서 떠난 적이 없었던, 영원한 현역시인”이라고 말한다. 유기수 시인은 시 '발음'을 거론하며, "평생 자연을 사랑한 목가시인이었고 일제의 저항시인이었던 석정은 끝내 자연을 관조하며 인간구원을 절규했던 시인이었다”고 기억했다.

 

전주태백신문사(1951년·3년)에서 편집고문을 맡았던 시인은 이후 전주고(1954년·7년)와 김제고(1961년·3년), 전주상업고(1963년·9년)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55년부터 전북대와 영생대학에서 시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1967년부터 2년간 전북예총 지부장을 역임하며, 전북 문화의 발전에도 큰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