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로서 또는 정치가로서 명성이 높았던 운재(芸齊) 윤제술(尹濟述) ― 그는 1904년 1월, 김제군 백산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거유 전간재 문하에서 16세까지 공부하다가 17세에 서울 중동(中東)고와 일본 동경고사(高師)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특히 그는 안호상(安浩相) 양주동(梁柱東)과 더불어 '중동 3재' (三才)로 이름이 높다.
일제 때는 모교인 중동을 비롯하여 보성, 성남고에서 영어교사로 지냈다. 특히 보성시절의 제자로는 方又榮(조선일보), 鄭世永(현대그릅)와, 전국회의원를 李重載, 崔泳謹씨, 성남고 제자로는 辛鉉根(전 전북일보 편집국장) 등이 있다. 해방 후 줄곧 이리 남성고 교장으로 초빙되어 오늘의 '명문 남성'의 터전을 닦았다.
1954년 교육계에서 정계로 길을 바꿨다. 처음 김제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서울 서대문에서까지 6선의 관록을 쌓았다. 1973년 정계은퇴까지 문공위원장, 원내총무, 부의장 등에는 야당으로서 국회 요직을 두루 거쳤다.
운재는 나라의 정치가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냉철한 판단으로 시국을 바로 잡아 주었다. 항상 선명한 입장에 서서 시시비비를 가린 것이다.
운재는 정평이 나 있는 명 문장가였으며 서예에도 높은 경지에 올랐던 명필이었고, 연설 또한 해학(諧謔)이 넘치는 명 연설가로 이름이 높았다. 1986년 7월24일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각 신문에서는 '해학과 대쪽 성품의 선비 정치인이 가셨다' 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