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공유재산의 비극

수확의 계절이다. 지금 들녘에는 천(天)·地(지)·人(인)의 조화로 빚어진 오곡백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천지는 청정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삶터를 제공하여 조건없이 온 생명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천지의 큰 은혜에 부응하고자 근검과 절제의 생활로 아름다운 산하대지를 면면히 보전해 왔다. 자연은 우리들의 미래세대와 공유해야 할 인류의 공동자산이다. 그런데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과 편의주의 추구 때문에 공유재산이 크게 훼손되고 그 기반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자연환경과, 공공재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가치규범과 제도가 무너질 때 그것을 ‘공유재산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고 한다. 어느 사회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공유재산의 비극은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경우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느 사회에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정부의 정책적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는 사회성원들의 의식변화와 그를 뒷받침하는 윤리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같은 위기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 데는 1960년대 초 정부 주도에 의한 ‘압축된 근대화’과정에서 파생되어진 ‘수단주의’·‘임시주의’라고 하는 사회심리적 기제와 관련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농정사회에서 억제되었던 물욕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나운 물욕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수단주의는 삶의 보람을 지금 ‘하는 일’, ‘사귀는 사람’, ‘사는 곳’ 그 자체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올 결과에 비중을 두고 목적시하는 생활태도를 말한다.

 

이처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태도는 현재를 과거와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보지 않고 그 순간만을 생각하는 임시주의이기도 하다. 사람은 지난 일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목표의식이 있으므로 수단과 목적의 연계도 알아야 하며, 순간을 임시로 알고 참고 견디는 생활습관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편향이 너무 심한 수단주의, 임시주의는 결국 목적부재, 윤리부재, 심지어 역사부재에까지 이르는 가치허약증을 수반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거의 모든 범죄, 부정부패, 부실공사, 공중도덕 부재 뒤에는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형성된 수단주의와 임시주의라는 심리기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기제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통용되는 한 사회발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더나은 우리들의 삶의 공동체를 일구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변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가치체계와 규범, 그리고 사회구조를 창출해내고 이것을 사회 각 부문으로 확산해 가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구조의 개혁과 함께 사회성원들의 도덕성과 문화적 감수성을 함양하고 뒤틀린 마음을 바르게 하는 개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거칠어진 심성과 윤리적 황폐화 현상을 이대로 방치하고 제아무리 경제성장 중심의 외형적 사회발전을 추구한들 그것은 또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구조적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박종주(원광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