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닿는 곳 마다 가을색이 완연하다. 설악에서 불붙기 시작한 단풍행렬은 그 영역을 남으로 넓혀 요즘 반도의 산야는 온통 오색 물결이다. 들녘에서는 농부들이 막바지 수확의 손길을 바쁘게 놀리고 있다.
쌀값 하락의 우려는 있으나 그래도 이 무렵의 농촌은 풍요의 기쁨을 구가한다. 일년 열두달중에 가장 좋다는 시월상달도 지났다. 풍요로움이 있고 단풍이 있고 청명한 날씨까지 있는 시월엔 축제가 봇물을 이뤘다.
도내 상당수 자치단체들이 이 시기에 축제의 마당을 열었다. 축제의 형태와 종류도 다양했다. 지역주민들의 화합과 단합을 위한 행사형 축제에서 부터 문화예술축제, 특산품 판매를 목적으로 한 축제가 있다.
도내에서만 한해동안 74개가 있는데 시월에만 20여개의 축제들이 판을 벌였다. 민선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이들 축제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규모가 가장 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국비 3억원에 도비 12억원과 자체수입 및 이월금 2억4천만원을 보태 모두 18억원이 들어갔다.
전국적 행사로 자리잡은 김제 지평선축제도 국비 1억원과 시비 4억5천만원이 소요됐고 남원의 흥부제도 시비만 1억2천만원이 배정됐다. 축제 규모에 따라 많게는 수십억원에서 적게는 수천만원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짚어보면 이렇게 많은 축제가 열리는데도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는 축제는 드물다. 축제 그 자체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몇개 안된다. 대부분의 축제들이 선심성이거나 일회성에 그쳤기 때문이다.
주최측이 문화산업과 연계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도 이유다. 선출직 공무원를 비롯한 지역의 기득권층이 축제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데 관심을 쏟는 것은 또 다른 이유다.
내발적 흥을 유도해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보다는 외지 관광객 유치에만 급급한 것도 축제의 질을 떨어뜨렸다. 부실한 이벤트에다 가짓수만 많고 실속이 없는 기획력 부재의 축제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손님 초대해 놓고 물건 판매하는데 급급한 얄팍한 상업적 축제도 눈에 거슬려 외면 당하고 있다. 지역축제가 난립하고 소비지향적으로 전락한 것은 ‘관의 입김’이 작용한 탓도 크다. 대다수 지역축제는 전문성이 결여된 공무원에 의해 주도되고 민간이 주도한 일부 축제도 보이지 않게 관의 간섭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창의성이나 경영마인드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관의 입김에서 조금씩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하루 아침에 축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요인을 찾아내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단체장을 비롯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낮내기와 간섭이 사라져야 한다.
당연히 기관의 입김도 축소되거나 차단돼야 한다. 그리고 지역경제와 문화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주최측의 인적구조 개선도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자산을 이용해 만들어진 축제가 지역경제의 견인차가 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속에 다양한 전략이 모색돼야 한다. 국내외 유명 축제들을 벤치마킹할 때다. 더 이상 외면 받는 축제는 설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