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생명의 존엄과 성스러움을 지니고 있기에 아무리 큰 현실의 고통도 살아있는 기쁨에는 비유 할 수 없음이다. 삶의 고통이란 물질의 부족이 가져옴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더 큰 고통은 언제나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욕심들이 만들어 낸다.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불꽃 덩어리가 마구니이고 사탄인 것이다.
진정한 삶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란 이러한 덩어리를 잘 다스리거나 녹여버리는 사람들이다. 이를 다스리거나 녹여내는 힘이란 삶에 대한 긍정적적 사고와 눈높이를 조절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은 물질의 고통 보다는 주변의 소외로부터 오는 정서적 고통에 더욱 시달리고 있다.
더군다나 오늘날 매스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욕구를 끝없이 가속 팽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속성상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없이 매체를 통해 과장되게 보여지는 세상에 대한 동경과 참여 욕구를 부추겨낸다.
그 세상에 가까이 있거나 머무는 이들은 별 문제가 없지만 가까이 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심한 좌절감이나 강한 욕구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힘을 내어 발버둥쳐 보아도 닿을 수 없는 먼거리의 공허함이 그들로 하여금 심리적 안정과 관용성을 빼앗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더불어 삶에 의욕을 북돋아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물질과 더불어 정서적 지원의 방법을 찾아야한다.
이러한 요구가 절실한 이때, 소외된 계층의 문화적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시키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희망을 선사하여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단법인 열린문화의연극 공연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소외받는 이들을 위하여 제작되어 전국 7개 지역을 순회 공연하는 제목 ‘모닥불 아침이슬’이 그것이다.
탄광촌 막장에서 일하다 매몰된 광부들이 참혹한 환경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애를 지켜가는 애절한 모습은 비록 오늘의 삶이 죽음에 이를 만큼 고단하고 힘들어도 왜 살아야 하는것인가를 우리로 하여금 선명하게 일깨워준다.
무료티켓 제공만으로 공연장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을 나는 문화적 소외 계층이라고 보지 않는다. 모셔오고 모셔다 드려야만 관람할 수 있는 이들이 우리가 말하는 문화적 소외 계층인 것이다.
선택과 감동은 물론 그들 몫이지만 최소한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도 문화적 향유를 위한 문들을 개방하고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기초적인 생계지원도 안된 현실에서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시는 이도 있겠지만 삶의 질 향상은 물질 충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 눈부신 경제 발전이 정서적인 성숙을 앞질러 물질적 성장에 치우친 결과 오늘날 많은 사회적 정신적 피해를 가져왔듯이 복지의 방향도 지나치게 물질 충족 위주로 흐른다면 너무나 건조하고 위험하지 않을까? 참고로 전주공연은 전북대 사회복지지원센터 주최로 11월 25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3시, 7시에 무료로 열린다.
/김영배(김제자활후견기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