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외국에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기 시작한 때는 60년대 초반이었다. 독일의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력 수출이 중당된 70년대 중반까지 17년 동안 1만7천명에 이르는 간호사와 광부들이 독일로 파견되어 갔다. 이들 간호사와 광부는 열악한 근무 여건 속에서도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급여의 상당액을 송금하여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당시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인력수출은 61년 서독이 한국에 약속한 3천만 달러의 차관에서 출발한다. 국제적으로 차관에 대한 보증을 받을 길이 없었던 한국 정부가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노동력이었다. 한국정부는 독일과의 합의를 거쳐 63년부터 광부를 독일로 보내기 사작하였고 60년부터 민간차원에서 진행된 간호사 인력의 독일 수출과 더불어 독일 차관을 얻기 위한 담보로 이들이 제공된 것이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고 했던가. 세계경제 10위권에 드는 한국은 어느새 3D 업종에 외국인 근로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가 되어 버렷다. 그리고 우리는 아득한 60년대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 이야기를 잊은 것이다.
오늘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인데 1990년 12월18일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굵직한 현안은 강제추방반대, 연수제도철폐 그리고 인권보장 등이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올 때는 몇 년만 고생하면 고국 땅에서 평생 걱정 없이 살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람은 많지 않다. 죽거나 다치고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적을 겪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히려 많다.
우리는 예부터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는 사회적 약자로 대접하던 미풍양속이 있었다. 이런 선행은 우리 가족과 이웃을 대접하는 일과 매 한 가지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그네된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