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얼굴없는 천사들

권순택 경제부장

올해도 ‘얼굴없는 천사’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난 2000년부터 전주 중노송 2동사무소에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며 남몰래 성금을 전달해 온 40∼5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올해도 동사무소 앞 표석에 현금 5백만원과 동전 44만8천여원이 들어있는 저금통을 놓고 갔다.

 

지난해 이맘때도 동사무소 옆 공중전화 부스안에 5백36만여원을 쇼핑백에 담아 놓아두고 전화로 동직원에게 찾아가도록 했다. 당시 쇼핑백엔 "올해는 열심히 일해 다른 해보다 더 많이 할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우리 동만이라도 결식아동이 없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힌 메모지도 함께 있었다.

 

이 천사는 5년째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1천5백만원 가까이 성금을 기탁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언론에서 이 '얼굴없는 천사'를 찾아 나서자 자신이 알려지면 "성금 기탁을 중단하겠다"고 간접적으로 전해와 언론도 추적을 중단했었다.

 

얼마 전엔 부산에서 50대 중반의 남자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2천만원짜리 수표를 쾌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이 남자는 수표가 든 봉투를 천원짜리 사이에 숨겨서 자선냄비에 넣고 사라져 구세군 관계자들도 그렇게 큰 금액이 들어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고 전했다. 수표가 든 봉투에는 '불우이웃돕기성금'과 함께 '뉴스에 공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며칠 전에는 서울대 의대에 "암 연구를 위해 써달라"며 70대 노부부가 시가 88억여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 2만주를 기부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노부부도 기부 당시 병원 측에 "신원이 절대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지난 21일 이 노부부가 모 알미늄제조업체 회장 내외인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자 노부부가 병원 측에 강력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갈수록 무관심과 냉랭함으로 삭막해지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온정의 불씨가 살아있는 것은 이같은 '얼굴없는 천사'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엊그제 대구에서 네살짜리 아이가 장롱속에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주검 발견 당시 같은 또래 아이들 몸무게의 1/3수준인 5kg에 불과했다.

 

광주에서는 30대 가장이 극심한 생활고를 못이겨 다섯살난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구멍난 어두운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국민소득 1만5천불시대라는 말이 정말 부끄러운 실정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구세군 등에서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지만 우리의 기부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의 기부금은 2천4백1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동모금회와 적십자사 등 14곳의 모금기관이 지난해 모은 돈은 4천2백56억원으로 GDP의 0.06%에 불과했다.

 

헐벗고 굶주림에 지쳐있는 이웃들의 빈곤문제는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이다.

 

성탄절을 맞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하는 ‘얼굴없는 천사’들이 더욱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