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잿밥'

절집에 가면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리거나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종종 볼 수 있다. 제를 지낼 살마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음식과 언행을 삼가며 부정을 멀리해야 한다는 뜻의 재계(齋戒), 죽 재(齋)를 지내는 것이다.

 

절집에서 지내는 재는 부처님 앞에 공양한다는 의미의 불공(佛供)을 말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인 제사(祭祀)와 다르다.

 

재를 지낼 때는 잡념을 모두 털어버리고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빌어야 한다. 행여 사심(邪心)이 들지 않도록 마음을 꽉 채워 일념으로 불공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한데 불심(佛心)이 여간 깊지 않으면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오랜 시간 염불을 해서 배는 출출한데 바로 코앞에 먹음직스런 음식이 놓여있으니 어찌 아니 신경을 쓰이겠는가.

 

우리는 흔히 제 할일은 소홀히 하면서 엉뚱한 욕심만 부리는 염치없는 사람을 빗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을 판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이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잿밥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정도가 지나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본래 소임보다 본인에게 주어진 직책이나 권한을 이용하여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하다 비난을 받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불교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이 최근 해인사에서 사찰의 크고 작은 행사 때 여비를 지급하던 관행을 끊겠다고 결의를 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결의는 통도사 주지인 현문 스님이 불필요한 행사경비를 줄요 뜻있는 일에 사용하고자 제안하여 이뤄졌다고 한다.

 

그동안 불교계에서는 다비식(화장식)과 진산식(취임식)은 물론 문중 큰스님의 생일과 기일 다례식에 참석한 손님 스님들에게 여비를 지급해왔는데, 근래에는 행사가 목적이 아니라 잿밥을 노린 객승(客僧)들이 부쩍 늘어 이같은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인심이 후하기로 정평이 난 절집에 잿밥이 사라진다니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서이 허전해진다. 잿밥 좀 챙겨보겟다고 사찰행사 찾아다니는 객승들의 처지가 딱하게 됐다. 정작 잿밥이 없어져야 할 곳은 이 멀쩡한 사회인데 어쩌다가 절집에서부터 잿밥이 없어지려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