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아는 것은 인쇄업밖에 없었다. 마침 와룡동에 있는 인쇄공장을 시설과 권리금을 합해 1백50만환에 인수하고 상호를 '삼화인쇄소'라 붙였다. '삼화(三和)'라는 상호는 장인께서 지어주셨는데, 그 뜻을 이렇게 풀이해 주었다.
"삼화라는 뜻은 천리에 순응하고, 매사에 조화로움을 중히 여김을 기본으로 삼는다. 천(天)·지(地)·인(人)의 화합, 자본·경영·기술의 삼위일체로 기업이윤을 축적하고, 고용을 증대하고, 국민경제와 문화발전에 기여코자 함이 삼화인쇄의 창업이념이다"
1954년 12월 1일, 삼화인쇄가 문을 열었다. 내 나이 32세였다. 사원은 공장장과 종업원, 사무원 등 모두 5명이었다.
나는 항상 한 걸음 앞서는 자세로 자기 혁신을 거듭하면서 계속 전진한다는 기업 신조를 갖고, 남보다 더 부지런히 뛰었다. 새벽에 별을 보고 집을 나와서 밤중에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도 많았다. 일이 바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굶기가 다반사였으며, 어쩌다 먹는 자장면 한 그릇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거래처를 다니고, 공장일을 돌보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1955년,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인쇄 시대를 열었다.
어느날 일본에서 귀국한 원색동판 제판기술자인 전차훈씨가 찾아와 흑백사진으로 원색인쇄판을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동업을 하자고 제의해 왔다. 우리는 일단 시제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경복궁 춘당지 흑백사진을 가지고 망판의 각도를 달리하여 동판에 적색, 청색, 황색, 흑색으로 판을 만들어 부식해 인쇄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원색사진은 우리나라 원색인쇄의 효시이자, 컬러인쇄 제1호가 됐다. 다소 부족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고, 본격 인쇄를 위해서는 최신 동판인쇄기계 설비가 시급했다. 우여곡절끝에 3백50만환을 들여 도입한 컬러인쇄기계와 제판시설로 삼화인쇄는 당시 월간지의 표지, 화보 및 학원사의 백과사전 원색화보 등 인쇄 주문이 쇄도하여 성업을 이뤘다.
이후 나는 서구의 인쇄기술을 앞당겨 도입하고자 한국 최초로 제판기술자를 서독으로 유학보내 새로운 제판기술을 습득시키고, 제판시설과 인쇄기계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 삼화는 우리나라 인쇄기술의 새 기원을 이룩했으며, '컬러인쇄' 하면 '삼화인쇄'라고 할 만큼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삼화인쇄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1961년 삼화출판사를 설립, 중고등학교 검인정교과서를 개발과 함께 세계동화전집 15권, 세계위인전기전집 12권, 세계미담전집 3권 등 총30권을 발행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삼화출판사는 지난 40여년동안 검인정교과서를 비롯, 각종 사전과 한국 동식물도감전집, 교육용 방송교재 등을 펴내며 명성을 날렸다. 성장기에 스승 역할을 하고 꿈을 실어 준 ‘책’에 대한 나의 열정이 배어있는 곳이 삼화출판사다.
/유기정(삼화인쇄·출판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