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의 새만금 조정권고문은 새만금 사업의 목적이 농지확보에서 복합산업단지로 사실상 바뀌고 있다며 사업변경을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 등 새로운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나 대통령 산하에 위원회를 두어 새만금 간척지를 어떤 용도로 활용할 것인지를 먼저 특정하고, 용도가 특정되면 그에 따른 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오염방지대책 및 수질관리대책이 확정돼야 하며, 사업추진에 추가로 소요되는 거액의 예산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질확보 문제가 불투명하므로 위원회 논의가 끝날때까지는 방조제를 막지 말라는게 재판부의 주문이다.
재판부의 주문은 나름의 이유와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내용이 크게 변했으므로 그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라는 것.
환경단체 목소리 전폭 반영
재판부의 판단은 새만금 담수호 수질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며 갯벌의 가치가 논에 비해 훨씬 높다는 등의 시각에 근거하고 있으며, 환경단체들의 목소리를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는게 전북도 등의 판단이다.
실제로 재판부의 권고문은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을 농업용수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사실상 힘들어 보이는 점을 고려할 때 (복합산업단지 조성때 필요한)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시화호와 화옹호 등의 사례도 나열하고 있다.
또 하구갯벌의 생태적 가치가 농경지보다 1백배 이상에 이른다는 영국의 과학전문지인 네이쳐와 농지가 갯벌보다 1.8∼2.6배 가치가 높다는 국내 한국 산업경제연구원 및 세종연구원의 자료를 동시에 인용하면서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갯벌의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북도의 반발
전북도는 새만금호는 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시화호와는 크게 다르고 현재도 수질이 크게 좋아지고 있다며 불만이다. 현재의 수질개선 속도와 예산투입 등에 비춰보면 환경부가 작성한 2012년 수질목표를 3∼4년 앞당겨 달성할 수 있다는게 전북도의 입장이다. 환경기초시설비 투자비에 대해서도 “해양환경오염의 방지를 위해서는 새만금 담수호 조성여부와 관계없이 환경기초시설에 대한 투자는 불가피하다”며 “어차피 투자돼야 할 환경시설비를 약간 앞당겨 집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갯벌의 가치에 대해서도 갯벌의 형태와 특성 등을 간과한 편견이라고 말하고 있다.
순차개발 원칙 무너져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방조제 완공후 순차개발방식’의 틀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놨다. 당초에는 방조제를 완공한 뒤 동진수역을 먼저 개발하고 만경수역은 수질문제가 개선될 때까지 유보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재판부는 공사중지를 결정했다. 방조제를 완공하고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할 경우 ‘어패류 등의 집단폐사가 불가피’하다는게 법원의 판단이다.
해수를 유통시키고 전체 면적의 1/3 정도만 개발하더라도 2천8백50만평의 용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북도가 요구하는 복합레저형 국제기업도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북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사가 중지될 경우 많은 문제가 있어 고등법원에서도 공사중지 결정을 취소했는데도 또다시 방조제를 막지 않는다는 권고를 했다는 것.
전북의 이익 논란
재판부는 현재의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2017년에야 복합산업단지 개발이 가능하며 이는 전북의 발전에 이익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해안시대를 맞아 각 지방자치단체가 인천 자유무역지역, 전남 해남·영암 관광레저도시, 평택한 확장사업 등 서해안의 개발선도지역이 되기 위해 사활을 건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서 2017년까지 기다리다가는 전북이 서해안 경쟁에서 밀려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재판부는 또 새만금사업의 규모와 중요성을 감안할때 여러가지 문제점을 심도있게 검토하는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덧붙이고 있다.
전북도는 지난 99년부터 2001년까지 2년동안 사업이 중단되면서 민관공동조사단이 조사를 벌였지만 시간만 낭비했을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며 “이제와서 이같은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다.
앞으로의 사업전망
게다가 지금은 관광·레저산업이 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시점이다. 새만금사업 추진을 놓고 앞으로 수년동안 논쟁이 계속될 경우 해외자본 유치 등이 막히고 관광·레저 복합도시 건설사업도 그만큼 늦어진다. 새만금 본안소송을 이유로 내부개발 용역을 6개월이나 늦췄으나 새만금은 또다시 궁지에 몰리고 반대로 전남의 J프로젝트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고 있어 전북도의 마음은 무척 무겁다.
새만금사업단측도 “불과 2.7㎞를 남겨놓고 공사가 중단될 경우 방조제의 붕괴 등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또다시 논의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새만금사업을 새롭게 되돌아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이 재판부의 단순하고 독자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새만금에 대한 현 정권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를 통해서도 전북도의 입장을 관철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정부와 코드를 맞추지 못해 사사건건 엇박자만 치기 보다는 장단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