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지금은 오리가 건강식으로 대접을 받고 있으나 옛날에는 오리보다 닭이 훨씬 귀했던 모양이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엉뚱하게 딴전을 피울 때 우리는 곧잘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놓는다’는 속담을 갖다 댄다. 왜 비싼 닭 잡아먹고 값어치 없는 오리 잡아먹었다고 둘러대는냐는 핀잔이다. 오리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불쾌할 노릇이다.
그러나 오리발도 긴요하게 써먹을 때가 있다. 5공청문회가 한창이던 80년대 후반, 고스톱판에서 5자와 2자·8자를 먹으면 게임에 져도 돈을 내지 않는 특혜를 누린 적이 있다. 또 죄를 지었을 때도 일단은 삽십육계 줄행랑이 최고고, 잡혔다 하면 요리조리 오리발을 내밀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정치인이나 경제인·공직자 할것 없이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만난 적이 없다, 만났으나 돈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돈은 받았으나 대가성이 없다”며 계속 오리발을 내놓지 않던가.
세상 살다보면 별 이상한 일도 다 목격하게 된다. 3선의원에다 한나라당 부산시당위원장이요, 당 중앙위원회 의장 겸 상임운영위원인 정형근씨가 잠실의 한 호텔방에서 40대 유부녀와 장시간 함께 있다가 외부인에게 들켜 당황한 모습으로 나오던 광경이 TV카메라에 잡혀 방송이 됐다.
안기부 수사국장 출신으로 평소 추오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데다 국민의 정부 시절 ‘DJ일등저격수’로 활약할 정도로 날카로운 대목이 있어 설마 정씨가 그렇게 어수룩할까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정씨였다. 물론 정씨는 해명자료를 통해 그 호텔방에 간 것은 오직 부탁했던 묵주를 받기 위해 간 것이다며 불륜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선을 그었다. 아직은 피해당사자가 없어 진실게임을 벌일 수도 없고 또 애꿎은 오리만 치사한 동물로 덤터기를 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