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서 삼재를 보면 12지 중에서 사유축(巳酉丑)년에 출생했으면 해자축(亥子丑)년에, 신자진(申子辰)년에 출생했으면 인묘미(寅卯未)년에, 해묘미(亥卯未)년에 출생했으면 사오미(巳午未)년에, 인오술(寅午戌)년에 출생했으면 신유술(申酉戌)년에 삼재가 든다 했다. 삼재는 단년에 끝나지 않고 3년을 걸쳐 있는데 첫 해는 들삼재, 다음해는 눌삼재, 마지막 해는 날삼재라 한다.
삼재팔난을 액(厄)이라 한다. 이 액을 비켜가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쓰는데 이것들을 일년의 첫달인 정월에 집중하여 실시한다. 이를테면 삼제에 해당된 사람은 방문 위나 문설주에 부적을 붙여서 액을 막는가 하면 당사자의 옷을 입혀 허수아비를 만들어 이름까지 붙여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 가운데 놓아 천세를 부리는 비법도 있는가 하면 저고리를 벗고 머리를 풀어 내린채로 높은 곳에 올라가 뛰면서 소리를 내어 주변의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었다.
유럽에도 삼재와 팔난을 예방하는 주술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16세기에 성행하였다. 박쥐의 피로 쓴 부적이나 교수형(絞首刑)에 사용했던 밧줄의 도막, 염소수염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닌 것으로 만족해했다. 필리핀의 북쪽인 루손섬의 가랑가족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찾아 공동묘지를 방황하는 시체먹이 귀신을 쫒기 위하여 오렌지 잎 등을 무덤 위에 놓는 것이나, 서아프리카의 베테족이 마귀를 쫒기 위해 테테구마라는 부적이나 주약을 쓰는 사례 등도 있다.
조선조 때에 궁중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에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상을 그려 내문(內門)에 붙이고, 귀신을 쫒는 종규의 그림을 붙이는데 이와 같은 것은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축귀문화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 한국의 민속을 연구한 일본 학자 무라야마 도로요시는 삼재와 팔난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화기법(火氣法), 주부법(呪符法) 등을 기술하고 있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에 쓰는 벽사문(?邪文)이나 기복문(祈福文)을 경면주사(鏡面朱砂)나 붉은 색으로 쓴 것은 양(陽)을 뜻하는 것으로 음(陰)을 쫒는 주력(呪力)이 있는 것으로 ale었기 때문이며, 동지 팥죽을 붉은 팥으로 끓여 장독, 짐승우리 등에 뿌리는 것도 삼재팔난을 일으킨 잡귀를 쫒는 방법이었다.
조선조 숙종은 45년이 넘는 기간 동안을 왕위에 있었기에 대신들의 재채기 소리만 들어도 감을 잡았고, 시골 선비의 상소장만 읽어도 민심의 동향을 짐작했던 임금이었다. 재위 말기인 어느 해 보름날 밤에 망월대에 올라 남산 밑에서 달집 태우는 것을 궁궐 담 너머로 구경하는데 그 위 공중에서 연이 화력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뜨인 것은 연 꼬리부분에 쓰인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글씨가 불빛에 반사되어 보인 것이다. 이것을 보고난 후로 숙종은 국사에 더욱 골몰하였고 연날리기와 달집 태우는 민속도 장려했다고 한다.
엊그제가 정월 대보름이었지만 도시화가 팽창되고 농촌에는 노인들이 많기에 민속문화를 할 수 없는 관계로 대보름인줄도 모르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며, 알고 있더라도 무심코 지나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