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기념일(紀念日)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옛것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양면성이 있다. 인간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면이 있지만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욕망도 커져 다시 뒤를 되돌아 보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날짜에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추억하며 기리고자 한다. 우리 일상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각종 기념일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기념일은 크게 공적(公的) 기념일과 사적(私的) 기념일로 나눌 수 있다. 공적 기념일은 3.1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을 포함해서 모두 36종이 있다. 여기에다 양력설 음력설에 추석 석가탄신일 예수탄신일과 같은 비정부주도의 기념일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딱히 몇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사적 기념일은 말 그대로 사사로운 기념일이기 때문에 숫자를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 결혼 회갑 제사 생일에 가정사와 연관된 이런저런 기념일을 더하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한데 요즘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국적불명 출처불명의 기념일들이 등장해 세상물정에 둔감한 장노년층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1월에는 다이어리 데이, 2월에는 발렌타인 데이, 3월에는 화이트데이, 4월에는 블랙 데이…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12월의 허그 데이와 머니 데이까지, 취지는 물론 의미도 모르는 각종 기념일이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근래 들어서는 외국산 기념일에 질세라 국산 기념일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 ‘기념일 대항전’을 보는 느낌이다. 1월1일은 배(梨) 데이 3월3일은 삽겹살 데이·화장품데이·아내의 날 5월2일은 오이 데이 9월9일은 치킨 데이 10월24일은 사과 데이란다. 외국산이나 국산이나 숫제 장삿속에서 만들어진 기념일 같은데, 그래도 국산 기념일은 우리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는 것 같아 거부반응이 그렇게 크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일이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무턱대고 기념일을 남발하다 보면 그 의미가 오히려 퇴색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기념일이 많다 보면 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날이 되레 기념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