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회사의 전용선 철로와 기차
“제지공장을 위해 놓은 철로예요. 그때는 이 일대가 제지공장이 있는 이쪽으로는 모두 깔바탕이었어. 노지였지. 일본사람들이 그 땅에 방직공장을 지으려고 준비했었는데, 해방이 되었잖아요. 그때 방직공장이 생겼으면 지금쯤 이 일대가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경암동 주민 최용곤씨는 입환열차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토박이다. 철길 옆에 집을 지어 산지 40여년. 그는 이곳에서 살림을 나고 아들과 손자까지 두었다. 삼대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하도 오래되다 보니 웬만한 일은 앉아서도 알 수 있어.” 기차가 몇차례 오고가느냐에 따라서 제지공장의 형편이 어떤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루 두차례 이상 뻔질나게 다니면 회사가 그만큼 잘된다는 것 아니겄어? 생활은 더 불편해지지만 그래도 기차가 하루라도 빠지거나 하면 회사가 잘 안되는가 싶어 걱정도 돼요.”
제지공장 페이퍼코리아(옛 고려제지)의 입환열차를 위한 이 전용선 철로는 1946년에 개설됐다. 제지공장의 물품을 실어나르는 화물열차를 위해 공장이 자신들의 땅에 놓은 철로다. 법적으로는 철로의 양편 일정한 거리안에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군산역에서 제지회사까지 이르는 전용선 철로변에는 온갖 건물들과 구조물들이 법적 거리와는 상관없이 최대한 가깝게 들어서있다. 특히 경암동 구간은 그중에서도 가장 좁은 구역. 기차 한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 유지되고 있는 덕분에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진다.
기차가 통과할때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비집고 들어설 틈새조차 보이지 않는 이 좁은 공간은 이곳 주민들의 중요한 삶의 흔적들이 놓여있다. 벽에는 빨래가 걸리고, 철길 건너편에는 각 집집이 활용하는 창고가 있다. 어떤 집은 그곳에 개를 키우기도 하고, 장독을 들여놓기도 했다.
철길을 따라가면서 보면 좁디 좁은 땅을 갈아 씨를 뿌린 예쁜 채마밭도 보인다. 기차 한번 지나가면 금새라도 묻혀버릴 것 같은 이 채마밭에 이제 막 싹을 틔워 나온 생명은 눈물겹다.
군산역부터 제지회사까지는 2.4Km. 통과시간은 왕복 1시간쯤 걸린다. 이 구간은 곡선과 직선의 구간이 반복되지만 경암동 구간은 완만하게 구부러지는 곡선 구간이 놓여있다. 철길 옆에 '기적'이라는 표지판은 기차가 이곳에 이르면 꼭 기적을 울려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라는 표시다.
군산역 문영식 역무팀장은 “입환열차의 경우 시속 25Km로 정해져 있지만 이 구간에서는 시속 10Km이상의 속력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다.
평균 운행은 하루 1-2회. 기차에는 2명 기관사와 수송요원 2-3명이 탄다. 2조 맞교대로 타는 입환열차는 운행 경험이 익숙한 고참들에게도 늘 긴장과 두려운 과정이다.
군산역 근무 1년을 맞는 임용재씨(39)는 “아무리 익숙한 노선이라도 어느 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순간이 계속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아이들의 ‘기차놀이’다. 철길 근처 구암초등학교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운행시간이 맞추어져 있을때는 비상이 걸린다. 아이들이 뒤따라오며 기차에 올라타려고 하는 바람에 겪는 고충이다.
철도쪽에 맞닿아 있는 벽면들은 건물의 뒷편이지만 주민들은 이 공간과 담을 쌓는 대신 아예 생활공간으로 늘려놓았다. 건물의 앞쪽은 경암동에서 구암동으로 이르는 6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건물의 앞쪽과 뒷쪽은 대조적인 풍경이다. 앞에서 뒷 풍경을, 뒤에서 앞풍경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은 세상사와도 같다.
입환열차가 다니는 경암동 철길은 지금 진귀한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낭만적인 추억 속 풍경이 아니다. 동요속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현실속에서는 더이상 낭만적인 풍경이 될 수 없듯이 이곳에는 삶의 서러운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군산의 입환열차 전용선
군산시의 입환열차 전용선은 군산역에서 페이퍼코리아에 이르는 철로말고도 대표적인 철로가 더 있다. 군산내항의 전용선과 군산역에서 옥구를 거쳐 비행장으로 이어지는 비행장전용선이다.
군산내항의 전용선은 폐선이 되었지만 비행장전용선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들 전용선은 군산의 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내항의 전용선이 물동량이 많았던 군산항구의 화려했던 시절을 짐작케해주는 것이라면, 비행장선은 미군 주둔의 공간적 역사를 담고 있는 흔적이다.
내항의 전용선은 폐선이 된지 오래. 지금은 흉물로 남았지만 개항과 함께 근대사의 중심에 있던 군산의 역사를 흔적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군산의 시내권에 있는 덕분에 근대사의 자취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군산의 근대사 답사 유산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다.
비행장선은 거의 활용되지 않지만 최근 3년여동안 1년 1-2차례 특별한 목적으로 기차가 운행됐다. 역시 화물을 운반하기 위한 입환열차다. 비행장이 예전만큼 활용되지 못하고 물동량이 거의 없어 옥구역에서 비행장에 이르는 철로를 따라 가는 기차를 좀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어졌지만 오는 4월 초쯤에 한차례 운행계획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