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면 싫든 좋든 운명적으로 이웃을 만나게 된다. 그 이웃은 자신의 집 주위에서부터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불특정인까지 다양하다. 한데 우리가 한평생 만나는 이웃은 우리 의지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주어진 운명대로(?), 아니면 지극히 우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좋은 이웃을 만나 상생을 하게 되지만, 운이 나쁘면 고약한 이웃과 부닥쳐 갖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웃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에도 이웃이 있다. 국가의 경우도 사람의 경우처럼 어떤 나라와 이웃하고 있느냐에 따라 명운이 달라진다. 상호 선린관계를 유지하면 태평 세계를 누리지만, 적대관계가 발생하면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 이웃 나라 끼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흔히 이웃 나라를 이야기 할 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를 곧잘 쓰곤 한다.
이웃 나라 복이 없기로는 우리 나라만한 곳도 드물다. 일본 중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어느 나라도 우리에게 편한 나라가 없다. 편하기는 커녕 틈만 있으면 호시탐탐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침략전쟁을 일으켜 왔다. 우리의 역사책을 펼쳐놓고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니 당시 선조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까 보지 않았어도 짐작 할만 하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고통과 치욕을 준 나라는 두말할 것 없이 일본이다. 사소한 노략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아예 우리 나라를 점령하여 식민통치를 35년간이나 자행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반성과 속죄의 기미는 없이 당연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역사왜곡을 밥 먹듯이 하고 멀쩡한 남의 나라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생떼까지 써댄다.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해방 60주년을 맞아 독일 슈뢰더 총리가 유대인들에게 또다시 깊이 머리숙여 사죄를 했다. “우리가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수치스러운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거듭 용서를 빕니다“같은 2차대전 전범국이지만 이렇게 처신이 다를 수 있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인들의 국민성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익 앞에서는 교활하고 무자비해진다는 것을. 무턱대고 흥분해서 성토만 할 일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대응하여 극복해야 한다. 유대인과 같은 강인한 정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