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역사갈등 美-유럽 시각 판이

한ㆍ일ㆍ중간 영토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인한 갈등에 대한 미국 정부와 민간전문가들의 인식이 유럽지역과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논란이 자꾸 계속되는(continue to persist)"(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 이유로, 유럽에선 일본의 과거사 처리 방식이 독일과 다른 점에 주목하면서 일본의 올바른 역사 문제 처리를 해법으로 우선 제시하는 데 비해 미국에선 현재 한ㆍ일ㆍ중 3국의 민족주의 충돌이라는 개념화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동북아 갈등에 대한 반응은, 한국과 중국에서 `장기적 국익을 해치는 감정적인' 민족주의 혹은 `정치인들의 국내 정치적 계산이 조장한' 민족주의가 북핵 협력구도나 동북아 안정.번영 구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의견이 주조를 이룬다.

 

최근 유럽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기고문에서 공통적으로 일본의 과거 역사 처리 미진을 지적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가해자인 독일과 피해자인 프랑스가 공동역사연구를 통해 역사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들며 제시하는 것과 같은 해법을 미국 언론 기고문이나 좌담회, 세미나 등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적 대일 분노의 배경 분석에선 엄밀하고 냉정하게 칼을 대고 있으나, 일본내 흐름과 관련해선 한국과 중국측의 `우경화, 군국주의화' 우려를 과민 반응으로 치부하면서 이것이 미국의 아시아 경영전략의 기축인 미ㆍ일동맹과 보조축인 한ㆍ미동맹과 미ㆍ중간 전략적 동반관계 구도를 흐트러뜨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3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재단 태평양문제연구소장은 "대부분의 일본인은 독도에 관심이 없는데 한국이 이 문제의 뚜껑을 엶으로써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익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며 "아시아 3국이 협력할 때 최대 수혜자는 한국이겠지만, 아시아 3국의 민족주의가 충돌할 때 최대 패자 역시 경제력이 가장 약한 한국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외교전쟁'이라는 말이 자극이 됐다거나 한ㆍ일갈등 이후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랐다는 말로 국내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시사했다.

 

더 직설적으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18일자에서 "한국과 중국 정치권이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기 위해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한국의 경우 재보선을 앞둔 시점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아메리칸 기업연구소(AEI)에서 열린 `미ㆍ일동맹의 부흥' 세미나에선 헤리티지재단의 발비나황 연구원이 "독도문제가 (더 중요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협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전문가 대니얼 스네이더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발행되는 머큐리 뉴스에 기고한 글도 "중국과 한국은 과거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선 "과거를 받아들일(come to terms with the past) 필요가 있다"는 애매한 주문을 내놓았다.

 

다만 13일 CSIS 좌담회에서 로버트 두자릭 경제무역산업조사연구소(RIETI) 연구원은 "나치 독일의 피해를 당한 폴란드에선 독일군의 주둔을 환영하는데,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주둔할 수 있을까"라며 독일과 일본의 주변국과 관계의 차이를 지적하고 "일본이 2차대전 전사자를 추모하려면 (전범과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대신 다른 장소에 국립묘지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일본내 일련의 흐름을 한국과 중국에선 `군국주의 향수를 품은 우경화'라고 보는 것과 달리 미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친구들 말은,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우익을 달래는 뜻에서 방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나 교과서 문제가 일본 정부의 대외 공세적 정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케네스 퀴노네스 `인터내셔널 액션' 한반도국장은 "한국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이 강력하다"면서도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지인들은 시마네현의 독도 조례에 대해 중앙 정부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고 일본내의 `국지적'인 일에 과잉대응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지난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한국 정부 당국자가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바람을 우려하자 그와 대화를 한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시각은 중국의 편집증적 망상이다. 한국이 너무 중국 시각에서 일본을 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동아닷컴이 12일(한국시간) 보도했다.

 

파시즘이 대륙을 휩쓴 역사를 가진 유럽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 피해를 당한 한국과 중국의 일본을 보는 눈과 일본에 대한 전승국이자 안보우산국 역할을 해온 미국의 대일 인식간 차이가 크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피해를 본 한국의 대일 시각을 `독립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중국의 시각을 빌린 것이라는 미 관계자의 분석은 최근 `한국의 중국 편향' 우려라는 미국의 편집증을 엿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