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토론자 중 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에게 질문을 하였다. 머리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중에서 본인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었다. 그 후보는 자신을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였다.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아마도 겸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 토론자가 생각하는 대통령 감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업무를 잘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부지런하기만 하면 차라리 게으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상대방과 마주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입은 옷으로 보아 경제적 형편이 어느 정도일 것 같고, 말투로 보아서 교육은 어느 정도 받은 것 같고, 하는 행동으로 보아 품성이 어느 정도일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곧잘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판단은 경험 등에 의해서 그 정교함이 좌우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경험의 폭을 넓히면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미국의 영화평론가 한 사람이 “생마늘과 배추를 섞어 때까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무덤’에서 파낸 김치를 먹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라고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 논조라면 보신탕에 대한 평가 역시 호의적이기를 기대하기 어렵겠다. 그뿐인가. 두루마리 황자지를 식탁 위에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한 지역사회만 하더라도 그 사회 고유의 문화가 존재하고 아울러 다른 지역사회와의 보편적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고 하면 그 사회만의 독자성과 다른 사회와의 동질성이 어느 정도의 비율이나 정도일 것이다. 하물며 나라끼리의 문화적 치아야 두 말할 것도 없다.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서도 전세계 영화를 대상으로 평론을 한다는 위인이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시거든 떫지나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