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가는 김 주석이 중국 지린(吉林)성 위원(毓文)중학교 재학시절인 1929년 이국 타향에서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노래다.
노래 소리는 굵고 쇳소리가 나는 김 주석의 전형적인 목소리다.
그는 집무를 보던 곳(금수산기념궁전)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많은 간부 앞에서손에 쥔 문서를 위, 아래로 흔들며 때로는 뒷짐을 쥐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김 주석은 이 노래를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빨치산 활동의 근거지였던 백두산밀영 사령부 귀틀집에서 불렀던 것을 회상하며 불렀다고 중앙TV 해설자는 설명했다.
중앙TV 해설자는 김 주석이 "노래는 혁명 승리의 상징"이라며 "노랫소리가 높아야 나라가 흥해집니다. 노랫소리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소개했다.
정정하기는 하지만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으로 보아 노래를 부른 시점은 그의말년께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 주석은 1994년 7월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김 주석은 자신이 만들었다는 이 노래를 종종 불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매체는 과거 빨치산 활동을 하던 시절, 6.25전쟁 기간 전투원들과 함께 이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내용을 종종 전하고 있다.
북한 매체가 사향가를 부르는 김 주석과 관련한 기사는 자주 소개하지만 실제로그의 육성 노래를 담아 내보내는 사례는 드물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언젠가 문학분야 관계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사향가'가 오늘까지도 널리 불리는 것은 그 노래에 우리 인민의 정서가 유순한 민족적 선율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사향가'가 바이올린 협주곡 등으로 편곡돼 널리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