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전세계의 비핵지대화"를 위해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고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핵물질을 국제기구 통제 하에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은 스스로의 핵 감축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번 회의가 북한과이란의 핵개발 억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아난 총장은 개막 연설에서 "핵무기의 사용을 막는 궁극적인 길은 전세계의 비핵지대화"라면서 "우리가 핵무기 없는 세상 만들기를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말로만그칠 것이 아니라 실현방안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며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핵물질 감축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난 총장은 또 "모든 국가들이 핵무기 실험의 동결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조속한 가입 약속을 재확인하고 냉전시대의 라이벌들은 핵 탄두를 수천개가아닌 수백개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체결된 `모스크바 조약'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오는 2012년까지 핵탄두를 각각 1천700개와 2천개로 감축할 예정이다.
아난 총장은 "평화적인 목적의 핵 에너지 개발 및 사용에 관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도 있는 능력의 개발을 통해서만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밝혀 이란에 핵개발을 자제할 것을 간접 촉구했다.
아난 총장은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해당국가들이 핵물질 농축이나 재처리 시설의 개발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난 총장은 북한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한 국가가 탈퇴의사를 표명한상황에서 NPT 체제의 신뢰성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조약 위반행위들이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이 조약이 의존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집단보장의 원칙은 의문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핵물질 농축이나 재처리 시설을 국제기구 또는 지역기구의통제 하에 두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이 방안이 협의되는동안 새로운 핵주기 시설들의건설을 동결할 것을 촉구했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이와 함께 평화적 원자력 이용을 위해 핵물질이 필요한 국가들에 대해 이의 공급을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할 것도 제안했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유럽연합(EU)이 벌이고 있는 이란의핵개발 중단 협상은 계속돼야 한다"면서 "이란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재개한다면 EU와의 협상은 붕괴될 것이며 그 결과는 이란 핵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미국은 핵물질 농축이나 재처리 기술의 이전을 전면 금지하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기존 제안을 재차 강조했다.
미국 대표로 연설한 스티븐 레이드메이커 국무부 차관보는 "우리는 핵무기 감축을 위해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찬했다. 레이드메이커 차관보는 "미국의 핵무기 감축 조치가 완료되면 1990년대에 배치됐던 전략핵탄두 가운데 약 80%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동맹 국가들은 물론 일부 서방 국가들까지 미국의 미흡한 핵 군축 노력을 비난하면서 좀더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비동맹국가 대표로 연설한 셰드 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은군축보다는 비확산문제를 강조함으로써 균형을 잃고 있으며 이는 NPT 체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대표인 장 아셀본 룩셈부르크 외무장관은 핵연료에 대한 접근권보장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더욱 감축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레이드메이커 차관보는 "평화적 핵개발의 이득을 향유할 권리를 주장하는 국가는 NPT에 따른 비확산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조약을 위반하는 어떤 국가도 핵기술이나 장비에 관해 양국간 지원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주장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국제 핵비확산 체제에 심각한 도전요인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직접적인 위협"이라면서 "북한은 하루속히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달간 계속되는 이 회의에서는 핵비확산, 군축,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등 전통적 의제 이외에도 북한 및 이란 핵문제, 핵연료 농축 및 재처리 통제, 추가의정서의 보편성 확보 및 검증 표준화, 평가회의의 연례화 및 상설위원회 설치 등NPT 강화조치, NPT 탈퇴조항의 해석 등 새로운 쟁점들도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핵무기 비확산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핵보유국의 군축과 평화적 원자력 이용 권리를 강조하고 있는 비동맹국가들이 첨예하게 맞서 의제도 정하지 못한채 개막돼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대표로 참석한 천영우 외교부 정책실장은 3일 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