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최루탄

“최루탄을 쏘지 마라/이길 밖에 없나니/마침내 투쟁하는 우리가 이 나라를 이루나니/우리가 피눈물이면 피눈물의 나라가 될 것이고/우리가 불임이면 불임의 나라/우리가 기관지 천식 팔병신 뇌손상 식물이라면 그 나라가 될 것이다/최루탄을 ㅆ죄 마라”(김정환의 ‘최루탄을 쏘지 마라’ 중에서)

 

얼추 1960년 4.19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숨막히는 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중장년층들은 최루탄이라면 소름이 끼치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1960년 4월 11일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오른 김주열군과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희생된 이한열씨의 죽음이 아직도 국민등 뇌리에 선명한데 최루탄에 대한 증오가 쉽사리 가시겠는가.

 

춥고 어두웠던 시절, 부당한 공권력의 대명사였던 최루탄은 수많은 사람들은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사과탄, SY44탄, 다연발 최루탄, 페퍼포크... 이름만 들어도 오싹해지는 이 최루탄들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SY44탄은 파괴력이 가공할만 하여 때로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병신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날만 새면 시위가 일어났던 1980년대 경찰이 10년동안 사용한 최루탄은 모두 1백87만여발이나 된다 하루 평균 5백11발 꼴이다. 최루탄을 가장 많이 사용했떤 해는 6월항쟁이 일어났던 1987년으로 총 67만3천5백88발을 쏘아댔다. 최루탄 구입예산만 해도 당시 돈으로 3백51억4천만원에 달했으니 하루 평균 9백63만원을 최루탄 발사에 쏟아부은 셈이다.

 

최루탄이 역사 속으로 퇴장한 시기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다. 1998년 9월 3일 만도기계에 공권력을 투입하면서 사용한 것이 마지막이다. 덕분에 최루탄 구입예산도 98년 12억8천만원에서 2000년에는 3억7천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는데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도 피를 먹을만큼 먹었는가 보다.

 

최근 필리핀과 브루나이, 쿠웨이트, 알제리,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의 시위진압 장비를 사겠다고 몰려든다고 한다. 반세기를 쌓아온 노하우가 있어 우리나라 시위진압 장비가 세계 어느 나라 것보다도 우수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지 남의 나라 일에 괜히 신경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