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인근 무주 안성에 고등학교가 생겨나자 그곳에 입학, 몇 달을 다녔다. 좀더 큰 곳에 가고 싶어, 전주로 나와 공고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공부에 꽤 소질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당돌하게도 인문계인 신흥고 교장을 찾아갔다. 공고에서 1등을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며 다짜고짜 장학생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교장은 용기가 가상해서인지 흔쾌히 받아줬다.
고교만 세 군데를 다닌 이 소년은 3수(修) 끝에 고려대에 들어갔고 4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대학 졸업 후 쌍용그룹에 입사, 18년 동안 주로 수출입업무를 봤다. 그러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고향인 진안 무주 장수 지역구에 출마,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 소년은 초등학교 5학년 등교 길에 우연히 동네 담벼락에 붙어있는 국회의원 선거포스터를 보았다. 그 사진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크면 자신도 꼭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했다.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내리 3선 고지에 올랐고 지난 1월에는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중책까지 맡게 되었다. 어렸을 적 별명이 진촌(진짜 촌놈, 또는 진안촌놈)인 이 시골소년이 정세균 의원이다.
정 의원의 트레이드마크는 '스마일', 이미지는 '클린'이다. 진촌 답지 않게 해맑은 피부에 항상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 조금 인위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학생시절 '신물나게 자취'를 하고, 술수가 춤추는 정치판에서 10년 세월을 굴렀으면 이지러질 만한데 변치 않는 모습이다.
그런 그가 지난 16일 전격적으로 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거취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사실 그는 내년 5·31 지방선거에 유력한 도지사 후보중 하나였다. 탄탄한 중앙인맥과 당내 지지 등으로 볼 때 손색없는 후보감이었다.
그는 이날 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입장보다 현재 맡겨진 책무(원내대표)를 잘 수행하는 것이 도민들에 대한 도리"라고 불출마 결심의 배경을 밝혔다.
이어 "정치인은 현재 서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필요할 경우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悴 死而後已·몸이 부서지도록,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정성을 다한다)를 인용해 자신의 뜻을 대신했다.
이날 회견은 1년 앞으로 다가온 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여러 말이 나오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도내 정가에서는 그가 여러 경우의 수를 저울질하다 연말께 입장을 밝힐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서 여러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번 회견으로 그런 오해들이 깨끗이 불식되었다.
그의 깨끗한 처신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2002년 5월에 있었던 민주당 도지사후보 경선에서도 그랬다. 당시 1648표를 얻어 35표의 근소한 차이로 졌을 때도 깨끗이 승복했다. 과열된 분위기로 봐서는 힘든 결정이었다. 특히 상대편 캠프에서 선거인단 명부 바꿔치기가 드러나 사법처리까지 되었는데도 "그것은 과거의 일"이라며 깨끗이 덮어버렸다. 어찌 보면 그것은 더 큰 일을 위한 작은 희생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앞길에는 더 많은 기회와 선택의 시나리오가 놓여 있다. 이번 불출마 선언이 그의 정치 이력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로 도민들은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