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쓰레기와 함께 살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는 온돌과 마루를 함께 만들어 이용하며 추위와 더위를 피했다. 지혜롭고 독특한 주거 문화를 옛사람들은 갖고 있었다. 잊혀져 가는 한옥의 장점은 또 있다. 옛집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흙과 나무가 숨을 쉬고, 쥐와 뱀과 제비도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었다. 같은 울안에 소, 돼지, 닭 따위의 가축도 함께 살았다. 그 밖의 작은 생물들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쓰레기까지도 함께 살았다. 논밭에서 나온 것으로 양식과 생활용품을 만들었으며 먹고 남은 것은 가축을 먹였다. 그래도 버려지는 것은 거름자리에서 발효되어 다시 먹거리를 키웠고, 배설물도 땅심을 돋우는 귀한 재료가 되었다. 생활용품은 기워 쓰고, 다시 쓰고, 돌려쓰다가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쓰레기가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과 어우러져 함께 살다가 흔적 없이 소멸되었다.

 

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함께 살 수 없는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남겨 놓았다. 그것들은 소각을 해도 공기 속에서 떠돌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다. 썩는다해도 심술을 부리며 물과 흙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줄 알면서도 계속 쓴다는 사실에 마음이 켕긴다. 잘 썩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저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까 생각한 것까지가 늘 나의 한계였다.

 

얼마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차고 넘쳐서 밖에까지 즐비한 봉지들을 보며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 대란이 멀지 않았다고 써놓은 글을 몇 달 전에 읽은 적이 있긴 하다. 알고 보니 전주 시내 음식물 쓰레기 수거량이 하루 200t으로 제한되었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를 집안에 두고 함께 산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음식물 쓰레기조차 갈 곳이 없어져 흉물스럽게 우리 곁을 맴돈다. 요즘은 쓰레기가 덜 나오는 음식을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웰빙이란 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로 가공 식품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제철 과일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는 고민을 누가 알아주랴.

 

쓰레기 문제가 문화인이라 자부하는 우리들의 우아한 삶을 위협하고 있는데 해결하려는 노력은 거북이 걸음이다. 누구의 문제도 아닌 우리의 문제를 서로 미루며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 걱정 없이 살던 나라에 집집마다 정수기가 들어앉은 것처럼 이미 시판되고 있는 가정용 쓰레기 처리 기계와 씨름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함께 살 수 없는 쓰레기를 만든 주체는 우리들이고, 그 때문에 고통받을 대상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이다. 다시금 쓰레기와 함께 살기를 꿈꾸는 것은 무리겠지만 쓰레기 문제를 이대로 두고 맘놓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눈앞에 닥친 문제 해결도 시급하지만 멀리 생각하며 심각하게 연구해야할 문제이다.

 

/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