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탤런트 박근형 - ⑭고향

'세계 연극제' 개최 어떨까

KBS '유행가가 되리' 로 지난 5월 열린 제15회 상하이 국제TV페스티벌에서 대상인 매그놀리아상을 수상했다. (desk@jjan.kr)

연극에서 출발, 방송과 영화계에 이르기까지 내가 서 있는 예술분야의 모든 영역에서 수십년간 배우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명성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좋은 연기에 대한 욕심을 짓누를 수 없어 지금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유감스러운 것이 한가지 있다면, 고향을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잘 풀리지 않은 것이다.

 

정읍에 있는 전북과학대학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물거품된 것은 지금도 아쉬운 기억이다. 정인대학을 전신으로 하는 전북과학대학은 지난 2003년 신학기에 영상학과를 출범시켰다. 영상학과가 장래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아는데, 당시 학교측과 나는 영상학과 설립을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최종적으로 내 이름을 걸고 학생을 모집하기로 얘기가 됐고, 제1기 학생 36명을 모집했다. 당시 내가 교수들과 합의한 것은 '배우 박근형'을 내걸고 학생을 모집하고, 또 내가 매월 한 차례 특강을 하는 대가로 학교 측에서는 월 3백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또 내가 받는 보수 전액을 정읍지역 연극단체인 '정읍사'에 전액 사용키로 했다. 또 정읍에 연극도 하고, 식사와 차도 서비스하는 카페테리아 같은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지역 연극 자생기금으로 사용키로 했다. 정읍사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전북과학대 학생들이 전국연극대회에 참가,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조건도 덧붙였다. 나는 학교측으로부터 월3백만원을 받는 조건이지만, 결과적으로 단 한 푼도 받지않는 조건인 셈이다.

 

그런데 2003년 3월, 입학생을 모아놓고 개학하는 날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나와 학교측 실무 교수 사이에 오간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도루묵이 돼버린 것이다. 고향 발전을 위해 뭔가 해보고자 했던 나의 순수한 설레임은 여지없이 날아갔고, 나는 허탈한 마음을 추스르기 조차 힘들었다. 과학대학측의 최모 교수가 나와 모든 협상을 담당했지만, 대학 수뇌부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나는 불쾌했고, 최모교수에게 말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또 학교가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그리고 돌아서 왔다. 끝이었다. 학교 측이 '중견배우 박근형이가 강의한다'고 홍보하며 학생을 모았는데, 그 뒤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고향 정읍은 문화하기 좋은 곳이다. 영화나 텔레비전 세트를 세워서 문화의 고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읍 일대는 동학혁명의 성지이고, 인근 부안과 고창 해변이 지척에 있지 않은가.

 

태인컨트리클럽 김경곤 사장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히 높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과 나는 후배 김성환 씨(한국방송연예인협회 이사장) 등 전북 출신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한벽문예'를 만들어 회장으로 있다. 우리는 그동안 골프대회를 개최, 그곳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고, 고향의 문화 발전에 대한 토론도 해왔다. 근래들어 활동이 주춤하고 있지만, 추스려나갈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극 등 모든 예능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 가운데 전북출신은 약40% 이상 되는 것으로 추계된다. 예향의 고장답게 우리 전북은 훌륭한 인재들을 두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모체가 되는 연극을 키워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예향 전북에서 불란서 아비뇽 같은 세계적 규모의 '세계연극제'를 개최하면 어떨까. 박동화 선생님을 비롯 훌륭한 연극인을 배출한 전북은 그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주영화제를 치르면서 많은 극장이 확보돼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가능한 일 아닌가. 최근 국회 김원기 의장이 정읍에 제2종합촬영소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대해 깊이 감사하며, 고향 전북이 세계적인 예향의 메카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감사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