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一史] 근민당수 몽양 여운형 암살

범인 한지근은 19세 홍안청년

좌우익간에 잦은 충돌과 테러사건이 빈번하던 1947년의 7월19일, '건준'(建準)과 '인공'(人共)이 없어지자 근로인민당의 당수로 활동하던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이 19세의 청년 한지근(韓智根)의 권총 저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날 몽양은 서울 명륜동의 친구 정무묵의 집에서 점심을 하고 당사로 돌아가기 위해 '독립신보' 주필 고경흠(高景欽)과 함께 승용차로 혜화동 로타리를 돌아가던 중 우체국 앞 커브 길에서 불의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커브길이라 차의 속력이 늦어지는 순간, 탕 탕 탕 총알 3발이 차 뒤편 유리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1발이 몽양의 바른편 어깨에 맞았으며 2발은 치명적인 후두부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범인은 평북 영변출신의 한지근(19세)으로 월 여 전에 남하한 자로 사건발생 4일 후인 7월23일, 송진우(宋鎭禹) 선생의 암살범으로 복역중인 한현우(韓賢宇)의 집 근처를 배회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경찰심문에서 '좌우익을 막론하고 민족을 분열시키는 박헌영 여운영 송진우 등의 지도자는 모조리 죽여야 나라가 바로 서겠다고 결심하고 결행한 의거'라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