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당구선수권 결승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가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어이없이 패한 일도 있었다. 큐를 들고 호흡을 가다듬고 막 공을 치려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파리 한 마리가 공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것이다. 그것도 번번이 결정적인 순간만을 골라서 나타나는 파리의 악몽에 시달리던 무적의 선수는 거듭 실수를 저지르며 진땀을 빼다 마침내 큐를 내던지고 만 것이다.
파리는 평소 사람에게 더러운 곤충, 하찮은 존재 또는 귀찮기만 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처럼 때로는 쓴 웃음을 짓게 하기도 하고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파리는 질병을 옮기는 해로운 곤충으로 주입되어 평생 동안 파리에 대해 거부감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파리를 때려 잡으려 하는 것이다.
남에게 손쉽게 죽음을 당하는 보잘것없는 목숨을 흔히 파리목숨이라 한다. 파리채로 힘껏 휘둘러 죽여본 사람이라면 파리목숨의 의미를 안다. 방금 전까지도 눈 앞에서 여기 저기를 옮겨다니며 두 발로 얼굴을 부비는 애교 아닌 애교를 떨어 대던 녀석들이 파리채 한 방에 방 바닥이나 천장에 떡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귀찮은 녀석들을 해치웠다는 쾌감과 함께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였다는 죄책감마저 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리목숨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직위에 오르든지 결국은 파리목숨이다. 이래도 파리목숨 저래도 파리목숨인데 왜 그것을 알지 못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아무 말이 없다가 하루 전에 해임통보를 하거나 인사발령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것도 달랑 메일 한 장으로 말이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것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괴감이 들어서 파리목숨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실 알고보면 파리만도 못한 직위 그 자체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