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도청과 선화당(宣化堂)

조선시대의 전라 감영 선화당이 위치하였던 구 도청청사는 얼마 전까지 전라북도의 정치적 상징물이었다. 이 자리의 활용 여부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전통문화도시 추진의 일환으로 전주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선화당 관아 건물군을 재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문화도시의 위상에 걸 맞는 상징적인 조형물을 세우기를 바라는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한 듯 하다.

 

그러나 선화당의 복원이 지니는 의미와 효과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전통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에는 아직 상징적인 조형물이 없다. 전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경기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적이 산재되어 있지만, 고도 전주의 랜드마크로 삼을만한 상징적인 건축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이다.

 

그 상징물은 순 목조로 된 극히 한국적인 건축물일수도 있고, 고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양풍의 건물일수도 있다. 흔히 고도에는 순수한 전통건축물만이 어울릴 것 같지만, 설계의도와 역량에 따라 고전과 현대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상징 천안문광장에 들어서는 프랑스 건축가 폴 앙드레 설계의 국가대극장이나,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 루브르 궁전(박물관)의 마당에 들어선 I.M. 페이 설계의 피라밋 형 유리건축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예컨대 전통악기로만 우리의 정신세계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이나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은 서양의 그릇을 빌어서도 한국인의 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모든 요구에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방문 센터,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부대시설들을 아우른 복합 문화컴플렉스를 세워 전주관광의 시발점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객사, 경기전, 한옥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방문 동선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고 구 도심의 활성화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옛것을 소중히 보존하여 이를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고도 전체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 그 큰 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주5일 근무제의 가족단위 중심의 관광시대를 맞이하여, 체험센터 등의 참여형 문화시설도 중요하지만 옛 건축물들과 오래된 돌담 등이 자아내는 고풍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꾸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요즈음의 관람객은 부채 등을 제작하는 장인의 손재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위치한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문화도시 전주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민속촌 등의 인위적인 유사 시설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만일 구 도청청사 자리에 새로운 문화상징물을 세운다면 이러한 전체적인 도시미관의 틀 안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