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탤런트 김성환 - ②

②옥구(군산)서 태어났어요

MBC '고향은 지금' 을 진행하는 김성환씨. (desk@jjan.kr)

나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옥구군 미면 산북리 110번지(지금은 군산시 미성동)에서 태어났다. 전쟁 난리통이어서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부모님(김점수-이애영)께서는 무려 8남매를 두셨고, 나는 장남이었다.

 

초등학교는 동네 근처에 있는 문창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집에서 아주 가까웠다. 인사성 밝고 성격이 활달한 덕분에 친구가 많았고, 어른들께 밉게 보지 않고 자란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동네는 바닷가와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가에 나가 놀 때가 많았는데 개펄에서 조개잡이하고, 방파제 등에서 나보다 훨씬 키가 큰 낚시대를 드리우고 망둥어를 낚곤 했다. 그 시절 나는 공부에 많은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치며 놀기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촌 아이였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나의 풋풋한 어린시절 꿈이 가득 배어있는 고향. 나는 고향 모교 문창초등학교에서 오는 8월14일 군산지역 어르신 수천명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개최한다. 송대관 선배를 비롯해 현숙 등 최고 인기스타 15명 정도가 출연하며, 이번 경로잔치는 내 일생 최대 규모의 행사가 될 것이다.

 

중·고교는 군산중학교와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리동네에서 산 하나를 넘어야 갈 수 있는 군산 시내에 있었는데, 걸어서 꼬박 1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논길을 따라가다가 월명산 자락 안에 위치한 군산수원지를 지나 산 속에 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등산하다시피하며 학교를 다녔다. 재경 인사 가운데 동향 선배인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이 길을 따라 군산으로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 나는 이런저런 흉내 내기를 좋아했다. 교실에 선생님이 안계시거나, 오락시간이 되면 교단에 올라가 재미있는 얘기로 친구들을 웃겨 인기도 있었다. 그 때부터 연기의 '끼'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그 때문에 동네에 천막치고 들어오는 서커스단이나 가설극장, 그리고 군산시내 극장에서 볼수 있는 영화가 소중한 볼거리였다. 나는 영화 한 편을 보면 출연 배우들의 이름이며, 역할, 배우들의 연기동작, 영화 줄거리 등을 그대로 꿰었다. 영화는 내 뇌리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고, 나는 친구들과 놀면서 재밋는 이야깃거리로 사용하였다.

 

고교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장난기가 많고, 유명 배우나 주변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흉내내기를 하면서 남들을 웃기는 일이 많았지만, 연기자가 되고자 꿈을 꾸어본 적도 없는 평범한 고교생일 뿐이었다. 다만 나는 고교 1학년 때 '여명'이라는 연극에 출연, 난생 처음으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고교 연극제 때였는데, 연극 '여명'에서 나는 주인공 어머니 역할을 했다. 비록 고교 연극제지만 정식 무대에서 처음 연기를 접한 경험은 새로웠고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내 꿈은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아니었기에 학창시절 나는 단 한번도 연극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의사라는 직업이 좋았고, 의대진학의 꿈을 키우며 공부에 열중했다.

 

하지만 나는 대입시 성적이 중간정도에 그쳐 의과대학에는 들어갈 생각도 못하게 됐다. 결국 1969년 고교를 졸업하고, 대입재수를 위해 상경했다. 재수학원을 다니며 착실하게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 때문에 내 인생은 확 바뀌고 말았다. 입시학원에서 만난 재수생 친구들은 “야, 성환이 너는 남 흉내 잘내고, 우스갯소리 잘하는데다 얼굴도 잘생겼으니까 탤런트나 한번 해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얘기를 자주 듣게 되면서 나도 속으로 “그럴까?”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