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군인과 총

김관춘 사회부장

남자들 몇몇이 모여 노는 자리에서 화제거리가 떨어지면 으레 등장하는 것이 군대 얘기다. 언제 들어도 흥미가 있고 싫증이 나지 않아 되풀이 된다. 이때 오간 대다수 군담(軍談)은 뻥이 보태지면서 재미를 더하고, 더러는 사실무근의 픽션이 실제처럼 각색돼 그럴듯 하게 전달된다. 시공을 초월하기도 하고 간접경험이 직접경험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군담은 특히 마쵸이즘(남성적 매력)에 빠진 남자일수록 뻥이 더 세다는 특징을 갖는다. 아마 주변 친구들 한테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최전방에서 간첩잡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월남전 무용담이며 기합받고 상관한테 대든 얘기는 그 다음쯤 될 것 같다.

 

군대 얘기는 대개 이랬다. 전방에서 근무할때 무장공비가 침투했는데 내가 에무왕(M-1)으로 몇명을 사살했다느니, 인민군 목을 몇명이나 벳다느니 등등 실화인지, 가공의 픽션인지 도통 분간이 안된는 얘기가 난무하면서 분위기를 잡는다. 이런 사람들 나중에 알고보면 대개 취사병 아니면 운전병이다. 심지어는 후방에서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 최전방에서 간첩 잡았던 얘기를 사실처럼 전달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실제 어떤 사람은 술자리에서 침을 튀겨 가며 분대형 각개전투 역할을 설명하면서 자신은 현역때 4번 ‘유탄기 발탄기‘ 사수였다고 자랑한다. ‘유탄발사기‘를 잘못 말한 이 친구는 그 자리에서 방위출신의 극비사항이 노출되는 바람에 크게 웃는 일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월남이라는 나라 근처에도 안가본 사람이 월남전 무용담을 사실처럼 얘기하다 들켜 면전에서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렇듯 남자들이 심심찮게 군대얘기를 주고 받으며 재미를 느낀 것은 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의 발로에서 일 것이다.

 

그런 대한민국 군대에서 요즘 군기가 쏙 빠진 일이 벌어져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얼마전 동해안 육군부대 해안초소에서 순찰중이던 장교와 사병등 2명이 괴한 3명에 의해 소총 2정과 실탄을 탈취당했다. 전방 GP에서 전우를 살상한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군인이 총을 빼앗기는 군기문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군인에게 총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군 당국은 괴한들이 흉기로 기습공격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그러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당시 상황을 감안할때 불가항력적 측면이 없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해도 경계임무를 수행중인 군인이 총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겠는가. 더욱이 이 지역은 과거 무장공비들의 침투가 잦았던 곳이다.

 

이런 취약지대에 근무하는 장병이라면 유사시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해 보고 생명과 같은 총기를 빼앗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예군을 지향한다는 군 수뇌부의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다시 한번 입증했다.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사과'와 '형식적인 응급처방'으로 일관할 일이 아니다. 말로만 외치는 국방개혁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혁을 통해 흐물흐물 해지는 군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이같은 군기문란 사고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이제는 피상적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래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2 창군의 각오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군을 믿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고 남자들의 군대얘기는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괴한한테 총 빼앗긴 장병들, 제대후 사회에 나가면 친구들한테 이번 사건을 어떻게 얘기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