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一史] 보불전쟁때 나폴레옹을 포로로

독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서거

“오늘날 우리가 처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는 다수결에 의해서만이 아니고 오직 쇠(鐵)과 피(血)로써 결정한다.”

 

고 한 이 말은 의회의 예산안 부결을 무시하고 군비확장을 서둔 1861년 9월, 독일의 유명한 비스마르크 수상의 연설이다. 오늘 7월30일은 그의 102주기(1898)이다.

 

1815년 베르린 서방 센·하우젠에서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철저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대학시절엔 술을 좋아했고, 결투를 무려 20회 이상이나 한 난폭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베트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한 때는 사법관 생활도 했다.

 

1951년 프랑크프르트 연방의회가 되면서는 정치무대에서 크게 활약을 했으며, 프로이센을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와의 대결은 불가피하다며 7주만에 정복하여 명성을 떨쳤다. 이어 1870년에는 보불전쟁을 일으켜 2개월만에 나포레옹을 포로로 붙잡았으며 1871년 1월, 파리를 함락시켰다.

 

파리를 포위 중이던 때 독일통일의 꿈을 이뤘으며, 통일독일의 초대 재상이 되었으며 19세기말 유럽을 리드한 탁월한 정치가가 되었다. 철혈재상인 그도 말년에는 황제와 충돌하여 1890년 3월,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