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습관에 대하여

처음 칼럼을 써 달라는 말을 듣고 세 번 사양 하였다

 

내 주제에 언감생심 칼럼은 가당치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적어도 이름 뒤에 가(家) 자라도 따라붙을 정도의 전문 지식이라도 있던 가, 온 세상에 명성이 자자한 덕망가라도 되어야지,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쓴다고 누가 쳐다보기나 하겠느냐 했다. 그랬는데도 꼭 그렇지 만도 않다는 것이다 독자층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라나...그건 그렇다 치고 왜 나한테 써 달랬을까 ?

 

내가 봉사하고 있는 YWCA는 고을 마다 다 있는데..

 

사실 우리 남원은 춘향고을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반상(班常)의 신분차별이 엄격 했던 그 당시에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상민(常民)들의 갈망 이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로마병정 이라는데 그 보다 더 강한 것이 조선시대 여성이라고 한단다. 여권(女權) 이라는 말을 쓰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당시 여성들에게 무슨 권리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었던가. “춘향고을의 YWCA회장” 필시 그 것이 나를 지목하게 했으려니 생각한다. 그러니 뛰어난(?) 애향가(愛鄕家)인 나로서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제갈량도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따라 나서지 않았는가. 세 번이나 사양 했으니 한 세 번 쯤 써 보기로 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나중 일이다 이 번이 그 세 번째다.

 

관습(慣習)과 습관(習慣)은 글자를 앞뒤로 배열만 달리해서 관습은“사회적 질서나 규칙”,습관은“버릇”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관습은 대법관 쯤 되신 분 들이 관심을 두실 터이니 습관 몇 가지를 보기로 하자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 쯤 이면 차가 서 기도 전에 일어나서 선반위의 짐을 챙기는 사람을 간혹 본다. 짐을 챙기는 사이 이미 통로에 사람이

 

꽉 차 나올 수가 없게 되어 버리면, 의자에 다시 앉기도 뭣한지 엉거주춤 고개를 꺾고 통로를 노려보며 빠져 나올 기회를 보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요즘은 도시 주변 천변이나 야산 같은 곳에 잘 단장된 산책길이 많이 나 있다. 길 한쪽 편에는 잔디밭도 있다. 그런데 그 잔디밭을 밟고 지나다녀 반질반질하게 나있는 또 다른 길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급한 일을 두고 와, 몇 걸음 발품을 아끼고자 저렇게 가로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습관 탓이리라.

 

“아기 염소 버츨 삼아~” 하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유명 성악가가 부른 가곡 중에“저 푸른 물결 웨치는 ~”구절도 있다. 노랫말은 분명 “벗을 삼아” “외치는”일 것이다. 평소 발음 습관 탓일까 ?

 

말 나온 김에 귀에 설었던 노랫말 몇 가지를 보자

 

얼마 전에 지성파 가수로 알려진 여자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징기스칸,징기스칸, 내 맘 속에 연인 이었네”하는 구절이 참 못 마땅했다

 

자기의 정인(情人)을 부르는 듯 “여자야, 여자야. 약해지면 안돼”하는 구절 역시 귀에 거슬렸다. 요즘은 또 여자 가수가 부른 노래가“오빠는 잘 있단다”다. 이난영 여사가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했더라도 “홍도야 우지 마라”가 오늘 날까지 인기리에 애창될 수 있었을까 ?

 

월남전이 한창일 때 “남남쪽 섬에 나라.월남에 달밤 ~”하는 노래가 유행했었다. 위도 상 우리보다 남쪽이니 “남남쪽”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월남이 “섬나라”는 분명 아니다. “간밤에 울던 제비 날이 밝아 찾아보니”하는 노래도 있다, 여태껏 밤에 우는 제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러다가 앞으로 “노랫말 평론가”자격으로 계속 칼럼을 쓰라 할 까 봐

 

이 쯤 해둬야겠다.

 

일전에 어느 식당에서 봤던 일이다. 손님 한 분이 종업원에게“다마네기를 갖다 달라” 하니 “다마네기가 무엇 이냐”했던 모양이다 “정말로 뭔지 모르느냐” “모른다”하면서 실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쯧쯧 ! “젊은이!, 내가 말실수를 했네, 양파 좀 갖다 주게나”했더라면

 

한결 여유로워 보일 텐데..

 

/계정희(남원 YWCA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