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언어로 본 일제의 잔재

언어 지킴은 나라 지킴과 같아라

전주종합경기장 입구의 현판 수당문이 철거되고 있다. (desk@jjan.kr)

일상생활 속에서의 일제 언어

 

지난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 95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 동안 우리는 1910년 8월 29일을 ‘한일합방일’(韓日合邦日)이라는 명칭으로 써 왔다. 우리의 뜻과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국주의의 침략적 야욕을, 일본은 ‘한일합방’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였던 것이다. 광복이 된지도 벌써 60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일제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제의 잔재’란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통치 기간에 우리 땅에 남겨 놓은 모든 형태의 부정적 유산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의 반일(反日) 감정은 언어에 있어서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버리려고 하는 심리적 면도 작용하여 많이 우리말로 순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언어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살펴보기로 하자.

 

어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의 대화이다. “기름 잇빠이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앵꼬가 되었네. 여기요! 기름 만땅이오.” 아마도 이런 대화를 승용차의 운전사 옆 좌석에 탄 사람은 많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굵은 글씨의 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의 잔재이다. 이를 우리말로 순화하여 바꾸면 “기름 가득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 떨어졌네. 여기요! 기름 가득이오.” 또한 어린 시절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놀 때 많이 했던 말 중에도 ‘쎄쎄쎄’, ‘구리구리’ 등도 일본어의 잔재라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닌 듯하다.

 

학교생활 속에서의 일제 언어

 

일제 35년간의 통치는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을 유지하고 조선에 대한 수탈을 영속화하기 위해 식민지 민중의 민족운동을 탄압하고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파시즘적 지배를 수행하는 한편, 그를 위해 식민지 민중을 노예화, 우매화하는 교육과 문화정책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그 방법으로 민족 언어와 문화를 박탈하고 제국주의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선전, 주입시킴으로써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케 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학교 현장이었던 것이다.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살펴보면, 우선 교문에서부터 시작하는 ‘두발, 교복 단속’ 역시 일제의 잔재이자 군사 독재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공공 기관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태극기’도 역시 그러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 수업 시작 전후의 ‘차렷, 경례’의 구호는 일제의 잔재가 군사 독재로 넘어가 아직까지 행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각급 학교 명칭에 사용되고 있는 ‘○○동(東)초등학교’ 등의 ‘동서남북, 중앙’, ‘제일, 제이…’ 등이 바로 일제 시대의 서열화와 분열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잔재의 흔적이다.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회고사’도 일제의 잔재이고, ‘훈시’(訓示)와 더불어 쓰이는 ‘훈화’(訓話) 역시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언어로써 일제의 잔재이다.

 

도내의 일제 잔재

 

우리 전북지역은 일제 시대에 수탈의 중심에 있었다. 드넓은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일찍부터 일본의 침략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래서 전북지역 일제 잔재의 대표적인 유물들도 대부분 곡창 지대의 쌀을 위한 것들이 많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를 보면, 우선 김제시 죽산면 내촌 마을의 ‘하시모토(橋本) 농장 사무소’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주무대로도 등장하는 곳으로 현재 농업기반공사 동진지소 죽산분소로 쓰이면서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호남평야에서 거둬들인 쌀을 전주와 군산의 전군가도(全郡街道:일제시대 수탈을 위해 만든 당시 조선의 포장 도로 1호인 길. 흔히 ‘신작로’라 불림)를 통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가져갔던 곳이 바로 군산이다. 군산은 일제가 수탈을 위해 계획적으로 탈바꿈시킨 도시였다. 군산의 입구인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발산초등학교는 일제의 농장으로 쓰였던 곳을 개조하여 만든 학교다. 당시 일본인 농장주[시마타니{島谷)]는 전북의 중요한 문화재를 자기집 마당의 화단에 석조물로 사용하였다.(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 발산리 5층석탑;보물 제276호-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에 있던 것)

 

그 외에 ‘개정병원’, ‘이영춘 사택’, ‘군산세관 건물’,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 등도 일제의 잔재에 해당한다. 일제 당시 군산 시내의 주요 지명이었던 ‘본정통, 명치정, 강호정’등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지금의 월명동과 영화동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현재도 일본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전주종합경기장 입구의 현판(수당문)도 우리 지역의 대표기업인 삼양사의 설립자인 김연수씨의 아호를 따서 쓴 것인데, 그의 친일 행각 때문에 철거되었다. 또한, 대표적인 친일 화가인 김은호가 그린 남원의 춘향 영정, 장수의 논개 영정도 철거논란이 일고 있다.

 

지명에도 일제의 잔재가 여전한데, 대표적으로 전주시 동산동은 일본인 지주(東山)의 이름을 따서 ‘동산촌’이라 붙였는데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최근 광복60주년문화사업추진위원회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제안 받아 발표한 것 중에 우리 지역을 흐르는 ‘만경강’과 ‘동진강’의 명칭도 원래의 ‘사수강’(泗水江)과 ‘사호강’(沙湖江)을 일제가 강제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 고유의 지명 가운데 한자어 왕(王)자가 들어간 지명은 왕(旺;日+王)으로, 구(龜)자는 구(九)로, 풍(豊)자는 풍(風)으로, 계(鷄)자는 계(溪)로 바꾸면서 그 의미를 격하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예로,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송천리 용계(龍鷄)마을은 고려 시대에 이성계가 왜적을 무찌르러 가다가 잠깐 이곳에 들러 쉬면서 잠이 들었는데,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깨어 출정하여 왜적을 무찌른 곳이라 하여 용계(龍鷄)라고 명명되었는데, 일제가 용계(龍溪)라고 바꾸었다.

 

언어와 민족 정체성

 

언어는 한 사람의 사상과 이성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삶의 도구이다. 더구나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민족의 정체성과도 같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지난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은 바로 코앞의 먹고사는 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정신을 멀리하고 있었다. 이제 광복 6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나아가 문화 민족으로서 자긍심을 갖는 계기는 바로 올바른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세계화, 민주주의 시대에 국제적인 언어 감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시민으로서의 자발적인 애국애족정신의 표현으로서의 우리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알아봅시다

 

-어떤 일본말이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지 알아보자

 

-생활 문화 속의 일재 잔재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일제 잔재의 문화를 청산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군산지역에서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일제가 남긴 유형물을 철거해야 하는지 아니면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보존해야 하는지 토론해보자

 

/우현식(전북일보 NIE교사위원·신태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