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안경이 매우 흔하지만 예전엔 안경을 쓰는 것만으로 미움을 받던 때가 있었다. 조선 헌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병구는 고도근시였다. 때문에 임금앞에서도 안경을 껴야 했다. 젊은 헌종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외삼촌이지만 자기 앞에서 안경을 벗지 않은 그를 괘씸하게 생각했다. 임금인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조병구는 임금이 자기를 이해해 줄 것으로 믿고 공공연히 안경을 낀채 임금을 만나다가 크게 책망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을 마시고 자살해 버렸다.
이처럼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라든지, 자신보다 신분이 높거나 연장자 앞에서는 안경을 쓸 수가 없었다. 안경이 귀한 물건인데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노인들만 쓰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시인인 괴테는 안경혐오증이 있었다. 안경을 쓰는 사람이면 무턱대고 싫어했다. 한번은 슈베르트가 그의 시에 곡을 붙이고 싶다고 청했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이유는 슈베르트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안경은 1280년께 이탈리아 베니스의 유리공들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에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이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찍부터 중국에도 안경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임진왜란 전부터 안경이 있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안경이 1590년에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성일의 안경인 점으로 미루어 그렇게 추정된다.
초창기 안경은 일명 ‘대못안경’으로 나무나 동물의 뼈로 만든 안경테에, 수정이나 유리로 된 둥근렌즈를 끼워넣은 단안경을 대못으로 연결시켰다. 이후 점차 개량돼 15세기에는 두개의 단안경을 연결한 브릿지 안경이 등장했다. 현재와 같이 귀에 다리부의 끝부분이 걸릴 수 있게 개발된 시기는 1850년 이후다.
최근 도교육청이 실시한 올 상반기 도내 초중고생 체질검사에서 초등생의 13.9%, 중학생의 30.3%, 고교생의 33.3%가 안경을 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생은 3명중 1명이 안경을 끼는 셈이다. 어린 사람이 안경을 끼면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예전 어른들이 이를 보면 뭐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