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였던 토마스 모어가 브라질과 인도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상상의 섬 ‘유토피아’를 처음으로 제시하였는가 하면, 프랑스의 위대한 건축가 꼬르뷰지에는 ‘빛나는 도시’라는 계획안을 발표하였다. 또 핀란드의 알바알토라는 건축가는 자연재료가 주는 따뜻한 질감으로 건축의 이상향 아키피아를 섬세하게 표현해놓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하게 아키피아를 꿈꾸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그러한 꿈과 희망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위아래 앞뒷집 할 것 없이 다들 고만고만한 형태로 질식할 듯이 꽉 짜여있는 아파트 숲속과 거미줄처럼 무질서하게 걸려있는 전깃줄, 불쑥불쑥 파헤쳐놓은 공사현장 그리고 눈에 좀 뜨일만한 건물이다 싶으면 으레 광고간판과 각종 현수막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 곳곳에 내걸려있기 때문이다.
소음공해와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이 먼지처럼 가득 차있는 우리 도시에 이제 ‘시각공해’라는 신종공해까지 가세하며 우리의 눈과 마음을 옥죄이기 시작하고 있다. 보고픈 것만 봐도 부족한 이 세상에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바라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허균과 조지오웰이 절망 속에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수많은 건축가들이 추구했던 아키피아처럼, 이제 우리도 우리의 생활무대가 되고 있는 이 거리에서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그 소중한 권리를 되찾아야 하겠다. 그것이 아키피아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