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一史] 노금석 대위 제트기 몰고 귀순

현상금 10만달러 미국 유학까지

한국전쟁의 휴전이 성립된 지 2개월 만인 1953년 9월21일 아침, 10만 달러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있는 소련제 MIG15 젯트기를 몰고, 구사일생으로 자유대한에 귀순한 사건이 김포공항에서 있었다.

 

이날 상오 9시 24분, MIG15 젯트기 1대가 귀순한 사실을 공군 측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일체 보도를 관제했었다. 그후 알려진 바로는 귀순용사는 북한 공군대위 노금석(盧今錫?22)이었다. 그는 평양의 순안 비행장을 출발하여 마침내 김포공항에 착륙한 것이다.

 

이같이 그가 귀순한지 사흘 후, 당시 대구에 있었던 육군본부 정훈감실에 난데없는 중년부인이 찾아왔다. “내가 노 대위의 어머니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고정월(高正月), 나이는 43세, 대구의 피난민 수용소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온 여인이었다. 그후, 10월12일 하오 5시27분, 미 5공군본부 3층 강당에서는 북에서 날아온 노비행사가 꿈에도 그리던 그의 어머니와 5년만에, 극적인 모자상봉이 이루어졌다. 어느 미군이 주었다는 곤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쯔, 주홍빛 넥타이로 단장한 청년신사 노비행사는 기자회견 중 어머니가 오셨다는 말에 뛰어나가 얼싸안았다. 10만 불의 행운아 노금석은 이듬해 1954년 5월10일, 미국유학의 길을 떠났다. 10만 달러는 당시 환율로 계산하여 1천8백만 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