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2005년 추석이야기

추석이 다가오자 무언가에 쫓기는 듯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느낌이 우리나라 며느리들에게 있는 ‘명절 증후군’에 따른 우울증과는 달랐다. 짧은 연휴 때문인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니 마음 속 깊은 곳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그것은 얇은 주머니 사정과 맞닿아 기분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경제가 언제나 나아져서 서민들의 주름이 펴질지 알 수가 없다. 추석 장보기를 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모두 얼굴이 밝지 않았다.

 

고향 마을 골목에 세워놓은 차들이 헤싱헤싱했다. 귀향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분석한 것처럼 삼 일밖에 안 되는 연휴 때문에 못 왔을 것이다. 미리 성묘를 하고 여행을 가거나 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 말대로 우리나라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는 게 힘겨워서 못 온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자꾸 앞섰다. 아직은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여 함께 명절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활이 풍요롭다면 분명 그 흥을 고향에서 풀고 싶을 것이다. ‘금의환향’은 못해도 내년에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배짱 좋은 큰소리는 칠 수 있어야 고향 갈 맛이 나지 않는가. 골목 가득 뛰놀던 아이들도 이젠 없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추석 아침은 적막했다.

 

우리 어렸을 때의 명절을 다시 떠올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 오면 새 옷, 새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설쳤다. 도시에 나갔던 언니, 오빠들이 선물 상자를 들고 환한 얼굴로 마을을 들어서면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는 어린 아이들에게 도시로 간 언니, 오빠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명절은 오랫동안 못 만난 가족과 친척, 친구를 만나는 만남의 장이었다. 고향 바람은 지친 도시 생활에서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했다. 먹거리의 풍성함으로 보나 계절로 보나 설보다는 추석이 더욱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붙들어놓고 싶은 세상 풍속은 변하고 문화도 바뀌어 간다.

 

해마다 추석이면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서 긴 팔 옷을 입었었는데 올해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 되고 잦은 비가 내렸다. 추석이 일찍 들은 탓도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추석이었는데 낯선 날씨까지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누가 올 추석 연휴 짧은 것이 큰 불만이라고 한 것일까? 방송에서 재빨리 내년 추석에는 징검다리 휴일까지 9일이나 쉴 수 있다는 정보를 희망인 양 알려주었다. 그 말조차 반갑지 않았다. 며칠 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내년에는 훈훈한 마음으로 추석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듣고 싶은 것이다.

 

 

/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