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점차 시간이 흘러서 더 시들해지면, 그 빈 공간에 쓰지 않는 물건들을 마치 창고처럼 수북이 쌓아놓게 된다. 쓰레기장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만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다른 집 옥상을 내려다보게 되면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저런 지저분한 건물 밑에서 우리가 밥을 먹고, 단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니! 보지 않았으면 모르되, 보고 나면 이제 잠자리마저 뒤숭숭해진다.
가을추수가 끝나는 대로 새 짚을 잘 추려서 이어 만든 초가지붕이나, 또 버선코처럼 살짝 들어올려진 고래 등 같은 기와지붕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건물을 지으면서 그 위에 지붕을 얹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 결과 우리 주변의 올망졸망한 산들처럼 그렇게 둥글둥글하던 지붕곡선과 그 처마 끝에서 흘러내리던 낙숫물소리, 그리고 길고 짧은 고드름이 제각각 장단 맞추듯 아롱다롱 달려있던 그 아련한 풍경마저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농촌에서조차 빨간 벽돌집을 그럴듯하게 지어놓고, 지붕대신 그냥 평평한 옥상을 만드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아니, 그 옥상에 고추도 말리고 창고처럼 물건도 쌓아두는 정말 요긴한 공간이라고 흐뭇해하기까지 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지붕은 머리에 해당되는데 그 머리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런데 그냥 단순히 지붕만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사회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던 천지인(天地人) 삼원(三元)사상에서 하늘(天)이 사라져 버린 것이고, 오랜 세월동안 우리 한민족의 핏줄에 발효되어 있던 옛날 그 「반듯한 정신」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건축이란 창(窓)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