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무덤은 봉분이 모두 둥글게 되어 있지만, 사실 고려시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무덤은 직사각형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왕이 아니면 감히 둥근 봉분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젖무덤처럼 둥글게 만들어진 큰 왕릉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론 경주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는 조금 다르다. 둘레석에 12지신상(支神像)까지 조각하는 등 태대각간으로서 왕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건축물에서도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왕이나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 아니면 기둥의 형태는 절대로 둥글게 할 수 없었다. 둥근 기둥을 쓰면 그것은 곧바로 역심을 품은 것으로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천원지방이라는 당시 우주관은 이렇게 기둥 하나에서도 나름대로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예산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 봐도 그렇고, 창덕궁내의 대표적인 살림집인 연경당을 살펴봐도 그렇다.
물론 지금은 얼토당토 않는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한옥을 지을 때마다 다들 아름드리 둥근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는 육중한 팔작지붕으로 덮는다. 그것이 이제는 일반화 되었다. 그리고 99칸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도 사라졌다. 건축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왕과 같이 거룩한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대 건축물들은 나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 가고 있고, 또 그렇게 꽉꽉 채워져 있는 것 같다. 더 중요하고 더 존귀한 존재를 위해서 기둥형태 하나에서도 다른 것과 구분하고 비워둘 줄 알았던 여백의 정신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건축이란 창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최상철(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