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농토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답에 보상을 해주는 별 희한한 제도까지 다 생겨났지만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멀쩡한 농토를 까닭없이 놀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상당 수 국민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판인데 빈 땅을 찾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혹 하천부지나 국공유지 같은 주인없는 땅이 나오는 기척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유를 해버리는 것이 당시 농촌 실정이었다.

 

그 뿐인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온종일 논밭 가장자리의 초목을 파내기도 하고,그러다가 이웃의 논밭두렁 경계를 침범이라도 하는 날엔 안면 몰수하고 대판 싸움이 붙기도 했다. 또 곡식을 붙일만한 땅이 있다 싶으면 산등성이도 마다 않고 온 가족이 총동원돼 개간에 나섰고, 심지어 돌멩이 천지인 임야까지도 밭으로 일궈 곡식을 심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한 때는 노는 땅을 활용하자며 논두렁에 콩을 심어 수확을 하기도 했고, 담벼락 밑이라도 빈 공간만 있으면 온갖 채소를 심어 빠듯한 살림살이에 보태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엔 농토가 삶 자체를 좌지우지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발빠르게 산업사회로 이동하면서 농촌을 떠나는 농민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농촌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갑작스런 산업구조 재편에다 정부의 무역지상주의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농촌이 하릴없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세계무역자유화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농촌은 아예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토는 이제 삶의 전부가 아니라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세상이 바뀐다고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쌀값이 폭락해서 농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하며 울부짖더니 결국 제풀로 지쳐 농사짓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쌀농사는 지어봤자 망하게 될 것이 뻔하니 차라리 과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농토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농지로서의 보존가치를 잃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같이 온갖 정성을 다 바쳐 가꿔온 생명의 터전이 맥없이 무너져 가는데, 농민들만 애가 탈뿐 여타 국민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으니 그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