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소리의 길이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이냐 눈물이냐.’ 말놀이 중의 하나로 쓰는 이 표현의 핵심은 무엇일까. 동일한 음절인 ‘눈’이 그 의미에 따라서 길게 발음하기도 하고 짧게 발음하기도 하는 음장이 이 말놀이 문장의 핵심이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음절을 이루어 의미의 변별력을 갖게 되지만 이런 음절은 길게 혹은 짧게 발음하는 방법으로 다시 의미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짧게 발음하는 눈(眼)과 길게 발음하는 눈:(雪)의 의미가 구분되는 것이다.

 

돌(週)/돌:(石), 말(馬)/말:(言), 못(釘)/못:(不能), 발(足)/발:( ), 배(船, 梨, )/배:(倍), 열(熱)/열:(十), 병(甁)/병:(病) 등 상당수 단어에서 소리의 길이는 의미를 구분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소리의 길이가 어느 지역에서나 의미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서울말과 중부방언의 첫음절에서만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두 번째 음절로 가면 길게 소리나던 음절도 짧게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북지방 사람들이 소리의 길이에 따라 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리의 길이는 순수한 우리말에서도 구분이 잘 안 되지만 한자어에서는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그도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 아닌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요즈음 우리말을 잘 알고 쓰자는 의도에서 신설된 우리말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리의 길이에 관한 문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내는 의도는 소리의 길이도 중요한 우리말의 한 기능이니 잘 알아야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나 중부방언권에 사는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사람이 체감하는 소리의 길이에 대한 분별력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의 문제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우리말을 바로 잡자는 생각에는 뜻을 같이 할 수 있지만 이미 굳어버려서 더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억지춘향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자주 사용하는 순우리말도 구분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사고(思考)’와 ‘사고(事故)‘를 발음할 때의 길이 차이를 구분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더라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토박이들이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