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있었다. 늑장을 부리다가 약속시간에 임박해서 집을 나왔다. 서신동에서 교동 한옥마을까지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했다. 더구나 차가 밀리는 퇴근시간 무렵이었다. 제 시간에 꼭 도착해야 했으므로 나는 연신 손목시계를 초조하게 들여다보다가 간신히 택시를 탔다.
약속시간에 늦으셨나 보군요. 눈치로 다 안다는 듯 사십 전후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조금요. 서둘러서 나왔어야 하는 건데 준비할 게 좀 있어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곱시까지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묻는 내 말에 그 기사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라디오를 끄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어떻게든 늦지 않게 도착하게 해 드릴 수는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나는 물론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으므로, 늦지 않게만 해주시면 아무래도 좋다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5분 전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 기사는 그 시간에 어느 도로가 어떻게 막히고,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로 차를 몰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좁은 골목길까지 몇 차례 드나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크게 과속을 한 것도, 신호를 위반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이는 전주 시내 도로를 좁은 골목길까지 훤히 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는 내가 가려고 했던 한식집의 위치까지도 정확히 알고 나를 그 앞에 데려다주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목적지가 보이고, 이제는 약간의 시간 여유도 생겼다 싶어서 나는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그 이는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 이게 제 직업이거든요, 하면서, 손님들이 비싼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이유 중 하나가 목적지까지 빨리 가자는 데 있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6개월 전에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는 그는,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같은 일이 가끔 생길 것을 예상해서 꼬박 한 달 동안 전주 시내 도로망과 시간대별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까 라디오도 일부러 끄신 겁니까. 그야말로 혹시나 해서 내가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운전에만 집중해야 하니까요. 이번처럼 시간에 쫓기는 경우에는 라디오 소리도 운전에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손님을 안전하게 모셔야 하는 것도 제 임무 아니겠습니까. 내릴 때 보니 미터기에는 5,200원이 찍혀 있었다. 나는 만원 짜리를 내면서 거스름돈은 4,000원만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사는 800원까지 꼬박꼬박 세어서 내게 주었다. 그러면서 미소띤 얼굴로 또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제가 말이죠, 적어도 이 일 만큼은 프로거든요. 나를 내려놓고 멀어져가는 그 택시를 바라보며 나는 그 기사가 마지막으로 내게 건넨 그 프로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뇌였다.
‘프로’는 물론 ‘프로페셔널’ 혹은 ‘프로페셔널리즘’의 머릿글자에서 따온 말이다. ‘직업’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전문가’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어원이 같으므로 이 두 단어는 당연히 하나의 뜻으로 해석되어야 하는데 가끔은 따로 떼어서 쓰이는 일도 적지 않다. 물론 많지는 않겠지만, 주요 관공서나 전주시를 대표하는 음식점 혹은 공연장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거리로 차를 몰고 나온 택시기사도 가끔은 있다는 말이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고 하는 여성의류 광고카피가 있었다. ‘직업’이나 ‘전문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말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싶다. 그렇게 하면 프로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혹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된다. 세상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또한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앞서의 그 택시기사는 그런 점에서 그 자신도 말했던 것처럼 프로라고 할 만하다. 프로가 아름다운 건 바로 그래서다.
/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