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날 인생의 깊은 번민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귀부인이 덕숭산 산자락을 찾아오게 된다. 청상과부였다. 자연히 작은 암자에는 남정네들이 기웃거리게 되고, 애간장을 태웠다. 아랫마을 박부자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은은한 보름달빛 아래에서 도저히 이세상사람 같지 않은 그 여인이 마침내 박부자의 간청을 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암자근처에 백제에서 제일가는 절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박부자는 흔쾌히 승낙을 했지만, 절을 완공할 때까지는 그 여인 곁에 갈 수가 없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박부자는 급한 마음에 백제에서 제일가는 목수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공사를 독려했다. 그 결과 절은 예정을 앞당겨 완공되었다. 절이 완공되던 날 밤 박부자는 약속대로 여인의 거처를 찾았다. 물론 여인도 곱게 화장을 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다소곳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박부자가 여인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 여인은 마치 무엇을 찾으려가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깜짝 놀란 박부자가 급하게 발뒤축을 잡아채자 그만 버선이 벗겨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뜰 바위틈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 후 해마다 봄이 되면 이상하게도 바위틈에서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버선바위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그 여인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수덕사를 찾아가면 그 전설을 되뇌면서 대웅전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최상철(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