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인연(因緣)

수년전 부친의 49제를 지내던 도중, 제(祭)를 주관하는 분으로부터 ‘이제 아버지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니 108배로써 마지막 배웅을 해드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떨결(?)에 108배를 하였다. 그런 연(緣)으로 아침마다 절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불문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있다. 한여름이면 부였게 먼동이 트기 시작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겨울에는 캄캄한 어두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면서 맨손체조를 마치고 108배를 하고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적선(積善)은 고사하고 오히려 업보(業報)만 더 짓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던 청소년기를 별 탈 없이 공부에 매진하도록 보살펴주신 것에 대하여, 당시의 가정형편으로는 대학 진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음에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것에 대하여, 그리고 대학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하여주신 것에 대하여, 또 어렵게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정겨운 고향 땅에서, 그리운 고향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하여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면서 108배를 시작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비롯한 조상님과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위하고, 남편의 화급한 성격을 무난히 받아넘겨주는 집사람과 결혼 후 수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을 위하여도 기도를 드리고, 또 몸담고 있는 검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주위사람을 위하고, 한편으로는 고향발전을 위하여 한배, 한배 절을 하다 보면 어느새 108배가 끝난다.

 

그런 뒤 두 손 모아 기도드리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말 한마디 나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00명? 아니 - 너무 많나? 그러면 100명? 아니! 필자의 경우는 특별한 모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20명이 넘지 않는다. 독자들도 한번 헤아려 보시기 바란다. 아무리 마당발(?)이라 할지라도 정치인이나 영업직에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50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느껴지는 모든 희로애락(喜怒愛樂)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은 하루에 만나는 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에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나에게 귀하고 귀한 존재인가?! ‘옷자락 한번만 스쳐도 전생에 수만겁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 하루 중에 만나서 말 한마디 나누는 사람은 그야말로 나와 아주 귀중한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만난 사람이 혹여 나를 슬프게 하거나 노여워하게 할지라도 ‘전생(前生)에 얼마나 귀중한 인연이었기에 오늘 그 사람을 만났겠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오늘의 인연이 전생에 지었던 나의 업보를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짐은 어떨지?! 물론 육신(肉身)을 가진 인간으로서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거나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지 아니하고서도 매사에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기가 어렵다 할지라도 그와같은 생각을 하루에 단 한번이라고 해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독자와의 인연도 이번 달 칼럼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지면(紙面)으로 연결되는 인연만 끝나는 것이지,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인연은 영원하리라 생각된다. 그동안 바쁘신 시간을 할애하여 졸고(拙稿)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귀하게 맺어진 독자와의 인연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할 것을 약속드리며, 독자님과 독자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