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런 표현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누군들 그르다 할까마는 현실은 꼭 이렇듯 명쾌하지만은 않다.
우리의 시위문화는 아주 옛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끝이 없겠지만 시위가 유난히 잦았던 시절로는 해방 직후가 아닌가 싶다. 심지어는 뜻도 모르고 ‘데모 데모 데모’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했겠는가. 이러한 다수의 의견표현은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그 주된 대상으로 하였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위의 원인제공자는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이었다.
이런 시위의 분위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70년대 초반 대학가가 아닌가 싶다. 독재정치에 항거한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은 떼를 지어 교문쪽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리고 교문에는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일부 교수들이 나와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힘겨루기는 힘으로만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서로의 처지를 배려하면서 큰 문제 없이 한 쪽의 양보(?)로 결판이 나곤 했으니 말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스승과의 한 판 힘 겨루기를 끝낸 학생들이 다음 상대로 경찰과 다시 힘 겨루기에 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경찰이 밀리기도 하고 때로는 경찰에 밀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교내로 들어오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시위문화로 보면 낭만적인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했던 시위에 돌맹이와 화열병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같은 시기에 시위를 전담하는 부대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몸으로 밀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돌과 최루탄이 닿을 수 있는 거리만큼 서로 떨어져서 힘 겨루기를 하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말이 바로 ‘무석무탄(無石無彈), 무탄무석(無彈無石)’이었다. 서로 먼저 시비를 걸지 않으면 자신도 가진 돌이나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이런 말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당연히 이러한 도구의 사용은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다. 고장난명(孤掌難鳴). 손뼉은 한 손바닥으로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비론처럼 들릴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시위현장만을 생각하면 서로 싸울 도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틀림 없다. 이런 관행은 어느 한 쪽에서 희생을 무릎 쓴 결단을 내려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