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사립학교

우리나라에서 사립학교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고려시대 최충의 문헌공도를 시작으로 당시 국학(國學)이 유명무실하자 학생들이 권위 있는 유학자가 세운 사학으로 모여들어 교육의 중심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들 사학은 성현을 사당에 모시고 학업을 수행케 하였는데 이를 계승한 것이 조선시대 서원이다. 대원군시절 이들 서원이 권력을 장악하고 대규모 탈세를 자행하자 서원을 거의 다 철폐하여 한 때 사학교육은 명맥이 끊길 뻔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한 구한말에는 교육구국의 기치로 전국에 사립학교가 설립되어 항일정신을 배양하였으며 만주 독립군의 중심은 바로 이들 사립학교였다.

 

그런데 일제로부터 광복한 이후 교육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빈약한 국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어 이승만 정부는“사립학교 재단을 설립하여 자기 토지를 재단재산으로 등록하면 토지개혁의 대상에서 제외해준다.”는 유인책으로 학교설립을 유도했다. 또 70년대 초에는 중공업 성장으로 고급 숙련 노동력 수요가 커지자, 박정희 정부는 민간자본을 면세를 조건으로 대거 끌어들여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설립해 많은 수요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중학교의 22.9%, 고등학교의 45.1%, 전문대학의 90.5%, 대학의 84.5%를 사립학교가 차지하게 되었다.

 

서구 선진국 중 사학의 비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가 20%, 우리와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한 일본이 16%인 데 비하면 비정상적으로 사학의 비율이 높은 것이다. 이는 국가가 사학에 기대여 국가의 당연한 국민교육의무를 소홀히 한 채 교육이 방치되었던 결과이다. 그런데 최근 국가의 적극적 교육지원이 확대되면서 그동안 사학에 대해 방임적 태도를 취하던 국가와 사학이 최근의 사학법개정을 통해 첨예한 대립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학교가 사유재산도 아니고 국가가 적당히 비켜가야할 문제가 아님을 서로 깨닫고 양보와 이해로 문제를 풀어야할 시점이다. 그동안의 사학의 수고와 노력을 한순간에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98%의 등록금과 국가지원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사유화한 사학운영은 문제이다. 교육구국의 사립학교 본연의 자리로 갈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