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범시인의 향수어린 책] 「추구」(推句·抽句)

지난날 어린이용 한자 책으로는 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어린이는 반절본문(反切本文:한글)을 깨친 여섯·일곱살 날이 또래의 아이들이었고, 두 가지 책이란 <천자문> (千字文)과 <추구> (推句·抽句)를 말한다.

 

<천자문> 은 저자가 알려진 단일본이나, <추구> 는 여러 종류가 전하고 저자도 알려져 있지 않다. <천자문> 은 중국 양(梁)나라 때의 주흥사(周興嗣)가 각기 다른 1천자의 한자로 4자 250구를 지어 이룬 책이다. <추구> 는 주로 5언·7언의 명구를 옛 한시문에서 뽑아(抽) 옮겨(推) 엮은 책이다.

 

‘천지현황(天地玄黃)/우주홍황(宇宙洪荒)’으로 시작하여 ‘위어조자(謂語助者)/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게 <천자문> 이다. 한 자의 중복이 없는 1천자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추구> 는 5언구의 것을 보기로 들어도, ‘천고일월명(千高日月明)/지후초목생(地厚草木生)’에서 몇 줄 안가 ‘천지여부모(天地如父母)/일월사형제(日月似兄弟)’로, ‘天地日月’의 글자가 다시 나온다.

 

나는 일곱 살때 할아버지로부터 <추구> 로 한자를 깨쳤다. 손수 필사·장정한 5언구 <추구> 였다. ‘千高日月明/地厚草木生'의 글자를 짚어가며 새김과 음을 읽고, 글구의 뜻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사시시’(四時詩),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하운다기봉(夏雲多奇峰)/추월양명휘(秋月陽明輝)/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을 알게 된 것도 저 <추구> 에서 였다.

 

내가 문학을 하게 된 것도 <추구> 덕택이 아닌가 싶다. <천자문> 은 꽤나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최승범 시인(65)은 전북대 교수로 정년퇴직했으며, 전북문인협회장과 전북예총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대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지난 97년부터 전주시 서신동 스타상호신용금고 부설 고하문예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수필문학연구> <시조에세이> <스승 가람 이병기> 등과, <난 앞에서> <자연의 독백> <몽골기행> 등의 시집이 있다. 정운시조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가람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수상했다.

 

최 시인에게 자양분이 된 책들을 시인으로부터 직접 소개받는 자리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