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희망을 찾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실 교육만큼 가능성이 큰 투자는 없다.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라. 배우지 않았다면 그 위치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배움으로 갖춘 경쟁력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우리가 위대한 작가나 철학자, 그리고 과학자나 기술자들을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두말할 것 없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훌륭한 인재는 우선은 주체의 자아실현이고, 또 어느 가문의 영광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자산이다. 더 큰 인물이라면 인류의 자산이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자녀만이 아닌 남의 자식도 잘 돌보아야 한다.
우리 교육은 그동안 너무 입시 위주에 매달려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열심히 가르치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무조건적 ‘열심히’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과연 몸을 마친 그 ‘열심히’로만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입시제도나 방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제 과거의 입시지도 경력만으로는 안 통한다. 대학의 전형방법이 개별화 되어 있기에 교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만큼 수업도 달라져야 하고, 학생에 대한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모든 것을 학교에 맡기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은 것 같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하루를 돌아다보라. 그 안에 구성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새벽부터 등교해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만큼이나 선생님들 역시 고단하다. 정규수업에 보충수업, 그리고 자율학습을 하고 나면 다리가 휘청거린다고 말한다.
그런 학교에 가치 평가를 우리는 어떻게 해왔는가? 오로지 내 자식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학교나 선생님들을 매도하지는 않았는가? 힘들었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가치 폄하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 학교는 우리 모두의 희망공간이다. 따라서 남의 일처럼, 아니 내 자식에게 서운하다고 함부로 대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전쟁 중에도 선생님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나라들은 모두 선진국이 되었다. 내 자식을 군대에 안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우리의 과거와 비교하면 확연하게 다르다. 우리 모두 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력신장으로 우리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지역이 발전해서 나 자신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효율성 높은 투자인 교육을 위해 힘을 모으자. 크게는 교육재정을 살리는 일부터 작게는 학교를 돕고, 선생님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좁게 보면 그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박규선(도교육청 교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