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명산대찰에 찾아갈 때마다 우리는 으레 대웅전 안마당에 떡 버티고 서있는 탑(搭)을 보게 된다. 저 혼자 우뚝 서있는 것도 있지만, 불국사 안마당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양쪽으로 정답게 나뉘어져 그 사이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진만 찍고 돌아서던 그 탑에도 사실 나름대로 의미가 담겨있다.
절을 짓는 것은 우선 탑과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육중한 돌로 그렇게 어렵게 조각해서 만든 석탑을 그 중요한 대웅전 안마당에 버젓이 세워놓은 것은, 원래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고 단순해 보이는 그 탑들이 사실은 불상을 모신 대웅전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고장에서도 조형미가 뛰어난 석탑이 몇 기 있는데,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석탑과 왕궁 5층 석탑 그리고 금산사 6각 다층석탑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단연 돋보인다. 지금은 한쪽 구석이 허물어져 다소 보기 민망한 형태로 기울어져 있지만, 미륵사지 석탑은 부여 정림사지 석탑과 함께 한국 초기석탑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인 탑이다.
사찰을 지을 때, 처음에는 목탑(木搭)이 많이 세워졌으나 화재로 자꾸 소실되자 좀 더 견고한 석탑을 건립하게 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바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그래서 미륵사지 석탑은 돌로 만든 석탑이면서도 기둥이 있고, 지붕이 있고, 또 벽면이 세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결과 얼핏 보면 마치 목탑처럼 보이게 된다.
무려 1400여 년 전, 백제 무왕 때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이 그 차가운 석재를 정으로 쪼고 또 쪼아서 곱디고운 목탑처럼 만들고자 했던 그 노고를 생각하면서 익산 미륵사지석탑 주위를 한번 천천히 돌아보면, 아마 세월 속에 묻혀버린 백제 무왕의 좌절된 기상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치 사자가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獅子仰天) 미륵산의 그 웅혼한 정기와 함께···.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