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새주소 - 박헌주

박헌주(주택도시연구원장)

공간적 위치를 표시하는 수단은 주소다. 민법은 주소를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 즉 사람이 사는 곳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토지관리의 수단인 지번(地番)을 주소로 쓰고 있다. 생활근거지의 표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번으로 위치를 쉽게 파악하고 찾을 수 있다면 지번을 주소로 써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지번으로 표시된 주소로 위치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지번은 사람이 다니는 도로와는 무관하게 매겨져 있어 지번주소로 어디를 찾아가려면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 때문에 통신판매, 택배 등 물류뿐 아니라 도시교통의 흐름이나 도시정보의 효율적 관리 등 공간정보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생활불편에 따른 사회적비용은 추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10여 년 간 100개 지자체에서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부여하는 새주소사업을 완료했고, 69개 지자체는 추진 중이다. ‘도로명 등 주소표기에 관한 법률’도 의원입법 형태로 조만간 제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부여된 새주소가 쓰이지 않고 있다.

 

정보화시대를 여는 정보통신기술은 인간을 주체로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우주시스템을 거미줄처럼 엮는 삼간(三間) 네트워크 구축이 기초원리다. 시간은 누구나 어디서나 하루 24시간이다. 사람은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정보화된다. 공간정보는 주소로 표시된다. 그런데 공간정보의 핵심 인프라인 주소가 없다. GPS 같은 디지털 방식의 위치 표시방식도 있지만, 이는 숫자로만 표시되기 때문에 주소로 쓰기가 어렵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주소를 길 이름과 건물번호로 표시하는 이유다.

 

정보통신기술을 집약하여 삼간정보가 체계적으로 짜여진 세상을 유비쿼터스, 즉 시공자재(時空自在) 사회라 한다. 이 사회는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나누며,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다양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발전한다. 사람이나 물건, 정보의 이동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생활은 오히려 분초(分秒)를 다툴 정도로 바쁘고 정확하게 돌아간다. 당연히 속도(speed)와 시간(time)이 최우선 가치다. 따라서 위치나 이동을 정확하게 빨리 파악하고 추적할 수 있는 주소는 시공자재 세상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인프라다.

 

우리가 쓰고 있는 지번주소는 공간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의 시공자재사회에 맞지 않는다.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실용화되어 속도를 높이고 시간을 절약하더라도 공간정보가 제대로 구축 전달되지 않아 지역사회의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의 세계화와 정보화사회의 구축을 앞당겨 지역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새주소 활용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박헌주(주택도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