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면 보리 캐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보리 싹과 나물에 굴을 넣고 끓인 된장국의 구수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황토 흙 사이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어 이제 싹이 돋는가 싶었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은 초록 잎이 온통 밭을 덮었다. 삼례를 지나 익산 가는 길에 봄날이 온 것이다. 머지않아 물오른 나무에 벚꽃이 피고 바람에 꽃비 내리면 봄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보리밭을 누렇게 물들이면서 일렁이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대부분이 사립학교다. 서부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은 9월 신학기부터 저소득층 자녀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연간소득이 4만 5천 달러(약 4천오백만원)미만인 가정의 자녀는 전액을 면제해주고, 4만5천에서 6만 달러 소득 가정의 자녀는 50%를 감액한다는 것이다. 동부 예일대에서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하버드가 연소득 4만 달러 이하 가정의 학생에게 학비를 면제하겠다고 처음 발표했을 때 하버드대를 지망한 학생 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었다. 프리스턴이나 브라운 등 다른 유명 사립대학들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중이며,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은 3만 7천 달러에서 올해 2만 8천 달러이하 소득 가정의 자녀로 학비감면 지원 폭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에서는 가난한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질 것 같다.
전북의 주요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1,2종)를 대상으로 10명에서 70명 정도에게 100만원 내외의 학비를 보조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 학생대비 0.5%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립대의 2-3배나 되고 비정규직 1년치 임금과 맞먹는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생각하면,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학비 지원정도는 매우 미미하고 인색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올해도 인상되었다. 십여 년 사이에 5배가량이나 인상된 등록금에 비해 대학의 교육환경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의심스럽다. 미국 주립대학에서는 학비는 물론이고 기숙사비와 도서구입비까지도 지원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대부분 대학등록금이 무료이거나 매우 저렴하다. 이것은 정부가 전적으로 재정지원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국 초중등교육재정 적자액이 6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비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다. 그러기에 등록금 의존율이 70%가 넘는 사립대학의 재정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재정의 등록금의존율을 최대한 낮추고 평균 6%도 안 되는 재단전입금을 더욱 늘려서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학비지원을 확대함으로써 가난한 학생도 사립대학에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기억하면서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어려운 환경의 학생을 위해서 어떠한 몸짓으로 고민하고 노력했는지를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조미애(교육혁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