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아직도 침 뱉고 싶은 얼굴이 있다 - 김정수

김정수(극작가)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총리가 막 탄생할 즈음이다. 최고 통치자는 아니지만, 여성총리라는 상징성 하나만으로도 한국 사회에 만만찮은 파장을 가져올 것임에 틀림없다. 수 천 년 억눌려왔던 여성 지위에 분명한 변화의 지표며,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부 야당에서는 허물어진 무덤에서 파내온 썩어빠진 자를 또다시 꺼내들고 여성총리 지명자를 재보겠다고 덤비는 모양이다. 어찌 그 모양들인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을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로만 받아들이는 몰지각함보다 더 치졸한, 그야말로 논쟁의 가치도 없는 작태다.

 

차제에 여성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각도 바로 잡히면 좋겠다. 우리 안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성적 편견은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고 넓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 삼월 한달 정가의 이슈가 되었던 최연희 의원 사건이 그 뿌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짧고 작은(?)사건 안에는 왜곡된 성문화, 남존여비, 계급적 성차별, 후안무치의 성도덕 등 우리 사회 성문제가 종합세트처럼 구성되어 있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도 사뭇 이중적이다. “어머! 웬일이니? 어머머,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 라고 제발 말하지 말자. 내숭 떨지 말자는 말이다. 솔직히 당신도 그런 식으로 놀거나 놀고 싶어 한 적 없었던가? 아니면 그렇게 노는 사람들에 대해서 듣도 보도 못했던가? 정말 난생 처음 접한 이야긴가? 그렇다면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

 

우리에겐 유사한 추억이 있다. 지난 2003년 10월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회식 자리 경향신문 여기자 성추행 사건. 이 사건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운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배지를 자연스럽게 유지했다. 그 뿐 아니다. 전 제주도지사의 여성단체장 성추행사건, 지난달의 해양수산부 고위 공무원의 길거리 성추행 사건 등 알만한 권세가들의 추문이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용서했다. 단죄의 바람은 잠시 뿐이고 여전히 건재한 그들, 이처럼 좋은 증거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죄인에게 결코 침을 뱉지 못한다.

 

만에 하나 “그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공인이 말이야, 깨끗한 정치를 해야할 정치인이잖냐, 말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놔두지 말자. 과감히 침을 뱉자. 이거 죄 없는 사람부터 침 뱉는 것 아니야? 하는 번민일랑 버리자. 하느님께 죄송하지만, 모두 용서하기엔 세상에 용서할 일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놀란 척, 분개한 척이 아니라 단죄에 나서는 것이다. 하는 게 아니라 단죄다. 응징이다. 우리가 단호할수록 우리도 바뀐다.

 

선거철이 다가온다. 내숭도 용서도 잠시 잊어버리자. 나는 수양이 덜 되어서인지, 아직도 침을 뱉고 싶은 얼굴들이 많다

 

/김정수(극작가)